18일 경기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열린 KT와 삼성 경기에서 1루 홈 관중석을 꽉 채운 KT 팬들이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채 응원봉(비트배트) 등을 들고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충북 청주에 사는 이현진(29)씨는 지난여름 처음으로 야구장에 발을 디뎠다. ‘이름 같은 류현진 보러 가자’는 친구 말에 무심코 따라갔다. 이씨는 “처음 갔는데 너무 재밌었다. ‘치맥(치킨+맥주)’을 즐기며 응원가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축제가 따로 없더라”라면서 “그 뒤로 5번 넘게 ‘직관(경기장에서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것)’했다. 류현진 유니폼까지 샀다. 앞으로 계속 야구장에 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 42년 만에 1000만 관중을 동원했다. 17일까지 올해 1014만4279명이 프로야구 경기장을 찾았다. 이전 최다 기록(2017년 840만688명)은 이미 지난달 18일 넘어섰고 한 달 만에 1000만 고지를 돌파했다. 10구단 중 KIA, 삼성, LG, 두산, SSG, 롯데 6구단이 시즌 100만명(홈 관중 기준)을 넘겼다.

이런 흥행 폭발을 이끈 건 경기 자체 요소로는 전례 없이 치열한 순위 경쟁. 시즌 막바지까지 포스트 시즌 진출 경쟁이 치열한 덕에 각 구단 팬들은 끝까지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정규 시즌 종료를 열흘 남긴 상태에서 1위 KIA 외에는 ‘가을 야구’ 진출 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젊은 스타 탄생도 영향을 미쳤다. 역대 최연소 30홈런-30도루를 달성하며 MVP를 사실상 예약한 KIA 김도영(21), 고졸 신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넘어선 김택연(18세이브) 등 “젊은 선수들이 비약적 발전을 보이면서 젊고 새로운 팬이 많이 유입된 효과(이순철 해설위원)”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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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외적 요소로는 야구가 승부를 넘어 일종의 나들이나 오락처럼 소비되는 문화가 퍼졌다는 점이 거론된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흥겨운 응원 문화는 야구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젊은 팬들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관중에게 야구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으면 43.2%가 응원 문화를 꼽을 정도다. 나팔과 북으로 똑같은 응원가를 울리는 일본, 좋아하는 선수에게만 환호성을 지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는 선수마다 다 다른 응원가와 구호가 있고 구단 치어리더가 나와 경기 내내 흥을 돋운다. ‘노래는 임영웅, 야구는 김영웅’ ‘리그 1위 고산병 너무 힘들다’ 등 관객들이 재기 넘치는 응원 문구를 경쟁적으로 생산하고, 이 문구들이 방송을 타면서 온라인에서 ‘밈(meme)’으로 재생산되기도 한다. 최근 KIA 치어리더들 응원 춤인 ‘삐끼삐끼 댄스’가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오르면서 ‘K응원’이 새롭게 부각되기도 했다.

여성 팬들 증가는 금상첨화 같은 효과다. KBO(한국야구위원회)가 조사해보니 처음 야구장을 찾았다고 답한 응답자 중 여성 비율은 48.6%. 기존 관람객은 37.2%가 여성이었는데 올해 여성 야구팬들이 대폭 늘었다는 얘기다. 이들 ‘신규 관람자’ 중 20대가 31.4%, 미혼이 53.2%를 차지해 젊은 싱글들이 야구장에 많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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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수 두산 홍보팀장은 “젊은 여성 팬들은 팀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열성적으로 응원하기 때문에 이기건 지건 야구장을 꾸준히 찾는다”며 “아이돌 팬덤 못지않은 열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젊은 여성 열성팬들은 “아이돌 콘서트 공연장 표는 구하기 어렵고 각종 ‘굿즈(기념 상품)’ 값은 턱없이 비싼 반면 야구 스타들은 매일 경기장 가면 볼 수 있고 표 값도 1만~2만원대로 저렴하다”고 설명한다. 각 구단도 이런 열성팬들 기호에 맞춰 경기 후 선수들 모습, 일상, 훈련 모습 등을 유튜브 영상 등으로 만들어 관심을 지속 가능하게 이어가려 노력하는 중이다. 버전을 다양화한 유니폼 출시도 아이돌 문화를 벤치마킹한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