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승 그만 해요.”

아산 우리은행 김단비(34)는 위성우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30일 열린 2024 여자 프로농구 챔피언결정 홈 4차전에서 청주 KB스타즈에 78대72로 이긴 뒤였다. 3승1패로 5전3선승제 시리즈를 끝내며 챔피언전 2연패(連覇)를 이끈 위 감독은 “오늘 지나면 다 잊어버릴 거다”라고 받았다. 정규리그에서 KB에 2승4패로 밀렸던 우리은행은 챔피언전에서도 열세일 것이라는 평가를 보기 좋게 뒤집었다. ‘원 팀’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준비된 이변이었다.

세리머니는 살살해줘 - 위성우(맨 위) 우리은행 감독이 지난 30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여자프로농구연맹(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뉴스1

우리은행 포워드 김단비(180cm)는 ‘봄 농구’ 8경기를 치르면서 평균 38분38초(40분 경기)를 뛰었다. 특히 챔피언전에선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자신보다 16cm 더 크고 8살 어린 KB 센터 박지수(196cm·26)를 사실상 전담 수비했고, 공격할 땐 포인트가드 역할을 맡아 플레이를 조율했다. 김단비는 “플레이오프 때는 꿈에 삼성생명이 나왔고, 이번엔 지수가 나왔다. 자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김단비는 4차전 24득점(7리바운드 7어시스트 5블록슛 4스틸) 등 챔피언전 평균 21.7점(6.5리바운드 6.5어시스트 2.5블록슛 2.3스틸)이라는 전방위 활약을 펼치며 MVP(최우수선수)로 뽑혔다. 기자단 투표에서 59표 중 58표를 얻었다. 2연속 챔피언전 최고의 별이 됐다. 그런데도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다. 로테이션을 돌면서 계속 협력 수비를 들어온 선수들이 더 많이 뛰었다”며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4차전에서 우리은행 박지현(24·183cm)은 25점(3어시스트)을 넣어 양팀 최다 득점을 했다. 주장 박혜진(34·178cm)은 3점슛 3개를 포함해 14점(8리바운드 5어시스트)을 올렸다. 67-66으로 쫓기던 4쿼터 종료 1분 39초 전엔 백보드를 때리고 들어가는 결정적 장거리 3점포를 터뜨렸다. 박혜진은 KB 슈터 강이슬(30·180cm)을 무득점으로 묶는 수비로도 공헌했다.

우리은행의 2023-2024시즌은 험난했다. 김정은(37·180cm)이 하나원큐로 팀을 옮겼고, 신한은행에서 영입한 유승희(30·175cm)는 개막전에서 무릎 십자인대 파열을 당한 뒤 코트에 돌아오지 못했다. 박혜진도 부상 등으로 30경기 중 17경기만 뛰었다. 위기 속에서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다. 위 감독은 “나윤정, 이명관 등 그동안 많이 뛰지 못했던 선수들이 잘해준 덕분”이라고 고마워했다.

정규리그 1위였던 KB는 2년 만의 통합 우승에 도전했으나 챔피언전에서 박지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다 고비를 넘지 못했다. 4차전 23득점(15리바운드) 등 챔피언전 평균 24점(17.3리바운드)을 넣은 박지수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지쳐가는 모습을 보였다. 가드 허예은(12점 6어시스트)이 4차전 3쿼터 시작 3분여 만에 5반칙 퇴장 당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우리은행은 통산 챔피언전 12회 우승을 일구며 국내 모든 프로 스포츠팀 통틀어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1회 우승한 KIA(해태 시절 포함)를 제쳤다. 위성우 감독은 2012년 우리은행 부임 이후 9번 챔피언전에 올라 8번 정상을 차지했다. 2022년 챔피언전에서 KB에 3패로 무릎 꿇은 뒤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김단비를 잡아 팀을 재편했다. 우리은행이 다음 시즌에도 영광을 이어 가려면 당면한 숙제부터 풀어야 한다. 주축 멤버 박혜진, 박지현, 최이샘, 나윤정이 FA 자격을 얻기 때문.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샐러리캡(팀 연봉 상한액·14억원), 수당(2억8000만원) 소진율 100%를 기록한 유일한 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