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 38분 전력 질주하던 황희찬(27·울버햄프턴)이 별안간 오른쪽 허벅지 뒤쪽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주저앉았다. 5일 열린 리버풀FC와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홈 경기에서였다. 상대 수비가 그저 옆에서 뛰고 있었을 뿐, 아무런 물리력이 가해지지 않았는데 혼자 쓰러졌다. 그라운드에 누운 채로 통증을 호소하던 그는 의료진의 검사를 받은 끝에 실려나가진 않고 스스로 힘으로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이날 좋은 플레이를 펼친 때문인지 교체아웃되는 그에게 홈 팬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황희찬은 이후 그라운드 밖에서 조심스럽게 걸으면서 다리 컨디션을 살핀 뒤에야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울버햄프턴의 황희찬이 5일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축구경기에서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 있다/AFP연합뉴스

황희찬은 지난해 11월 새로 부임한 훌렌 로페테기 감독의 신임을 듬뿍 받고 있었다. 부임 이후 치른 리그 6경기에서 모두 선발 명단에 포함됐고, 이날 경기도 팀의 첫 골인 상대 자책골을 유도하는 날카로운 크로스를 선보였는데 대형 악재를 맞았다. 황희찬은 지난해 11월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같은 부위를 다쳐 조별예선 1·2차전인 우루과이전, 가나전을 결장한 전력이 있다.

허벅지 뒤쪽의 근육과 힘줄을 ‘햄스트링(Hamstring)’이라고 부른다. 이 부위 부상은 황희찬뿐 아니라 모든 축구 선수들에게 악령과 같다. 달리기를 멈출 때 주로 쓰는 곳이기 때문에 넓은 운동장에서 전력 질주를 하다가 급하게 멈춰 서야 하는 축구 선수들이 주로 다친다. 큰 수술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물리적인 외부 위해를 아무리 피해도 혼자 다칠 수 있다는 점이 공포로 다가온다. 예방책도 따로 없다. 허벅지 근육을 통나무 두께만큼 크게 키워도 재발한다. 쉬는 것 말고는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래서 ‘햄스트링은 운에 맡긴다’고 말하는 선수도 있다.

예측이 힘든 햄스트링 부상 탓에 한국 축구는 여러 번 울고 웃었다. 2010년 대표팀의 골잡이였던 박주영(38·은퇴)은 남아공 월드컵 개막을 한 달가량 앞두고 소속팀에서 햄스트링을 다쳤다. 이에 코치진과 팬들은 불안에 떨었다. 다행히 빠르게 돌아와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골을 넣으며 한국의 첫 원정 16강 진출을 이끌어냈다.

기성용(34·FC서울)은 2019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조별예선 1차전인 필리핀전 도중 당한 햄스트링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평소에도 햄스트링 통증을 자주 느꼈던 기성용은 근육 피로를 줄이기 위해 결국 대표팀 은퇴를 선택했다.

햄스트링 부상은 무릎 통증과도 연관성이 크다. 무릎이 아프면 무의식 중에 햄스트링에 더 힘을 주게 된다. 기성용도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 내내 고생 중이다. 박지성(42·은퇴) 역시 무릎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선수 생활 막바지에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렸다. 2011년 아시안컵을 마치고 바로 소속팀 일정을 소화하다가 햄스트링을 다쳐 4주 동안 소속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스피드로 승부하는 현 대표팀 주장 손흥민(31·토트넘)도 종종 햄스트링을 다친다.

축구뿐 아니라 타 종목에서도 햄스트링 부상은 공포다. 외야 수비, 주루플레이 등 빠르게 달리다 갑자기 멈추는 동작이 필수인 야구도 햄스트링으로 고생하는 선수가 많다. 현역 시절 도루로 유명했던 프로야구 정근우(41·은퇴)도 반복된 햄스트링 부상으로 나이가 들수록 도루 개수가 줄어들었다. 프로농구에서는 화려한 돌파를 뽐내는 허훈(28·상무)이 자주 햄스트링 고통을 호소한다.

☞햄스트링(Hamstring)

허벅지 뒤쪽의 근육과 힘줄. 달리기를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때 주로 사용돼 ‘브레이크’같은 기능을 한다. 전력 질주해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정지나 회전 하는 축구, 야구, 농구 종목에서 햄스트링 부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