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 5일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노르웨이와 16강전에서 선취골을 뽑아낸 뒤 환호하고 있다. 일본이 3대1로 이겼다./로이터 뉴스1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 ‘나데시코 재팬’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나데시코는 패랭이꽃을 뜻하는 일본말. 일본 여자축구 대표팀을 부르는 애칭이다. 나데시코가 강인하고 반듯한 여성을 상징한다고 해서 붙었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1위 일본은 2023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 C조 조별리그에서 잠비아(77위)를 5대0, 코스타리카(36위)를 2대0으로 누르더니 스페인(6위)을 4대0으로 완파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의 잘 짜인 축구를 보는 건 즐겁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노르웨이(12일)도 3대1로 격파하며 8강에 안착했다. 다음 경기는 11일 스웨덴(3위)전이다. 일본 열도는 월드컵 우승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일본 NHK는 전직 대표팀 선수 말을 인용해 “여자 프로 리그에 대한 대중 관심은 더 커져야 한다. 선수도 더 많아져야 한다”고 전한다. 성적이 좋더라도 마냥 만족하지 않고, 성적이 나쁘면 목표 설정, 리그 창설 같은 조치를 내놓는다. 이 같은 ‘위기의식’은 일본 여자 축구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그래픽=백형선

1960년대부터 여자축구 활성화

1960~1970년대 일본에선 학교, 기업 여성 축구팀이 지역대항전, 소규모 리그 등을 자체적으로 일구는 ‘풀뿌리 축구’가 이뤄졌다. 축구 강국 브라질도 신체 보호를 명목으로 여성 축구를 불법으로 규정하다 1979년 들어 관련법을 폐지하는 등, 20세기 후반까지 여자 축구 경기가 없었던 국가가 많았던 걸 감안하면 일본의 시작은 늦지 않았다. 토양이 있었던 일본은 1979년 여자축구연맹을 설립하고, 이후 전국 선수권 등 대회를 열었다. 1979년 919명이던 일본축구협회 등록 여자 선수는 10년 뒤인 1989년 1만409명으로 크게 늘었는데, 이 시기 미쓰비시 등 기업들 후원이 있었다.

1980년대 말 FIFA 여자 월드컵 창설 논의가 일자 일본은 1989년 준프로 ‘나데시코 리그’를 출범, 승강제를 통해 경쟁력을 갖췄다. 이런 준비들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체급 차이는 처음부터 컸다. 일본은 1981년 첫 A매치(국가대항전)를 갖고 유럽과도 경쟁한 반면, 한국은 1990년 일본과 첫 A매치를 가졌다. 결과는 1대13 참패. 한국은 2001년 여자축구연맹을 만들고 2009년 실업 WK리그를 창설했다. 한국의 일본 상대 전적은 4승11무18패로 크게 밀리고, 현재 등록 선수도 1487명으로 일본(2만7906명)에 비할 수 없다. 일본은 12국만 참가했던 1991년 1회 월드컵부터 이번 9회까지 개근했다. 한국은 4번 본선에 나섰다.

경제 불황 걷히자 본격 육성

1990년대 극심한 경제 불황이 일본을 덮치며 여자 축구도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기업들은 지원을 끊었고 구단들은 경영난에 시달렸다. 1996년 2만3796명이었던 선수 수는 2001년 1만9132명까지 떨어진다. 불황이 어느 정도 걷힌 2000년대 일본은 부활을 꿈꾼다. 일본 남자 축구는 1993년 “100년 안에 월드컵 우승한다”는 청사진을 그린 바 있는데, 여자도 ‘2030년까지 여자 월드컵 개최’ ‘2015년까지 월드컵 우승’이라는 특유의 목표 설정을 내놓기 시작한다. 주요 선수들을 해외로 보내고 경비를 지원하는 엘리트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경제 회복과 맞물려 2010년까지 등록 선수 수는 2만5278명으로 늘었고, 여자 축구팀 수도 2001년 967개에서 2010년 1226개가 됐다. 다만 일본도 등록 선수 10만명이 넘어가는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저변이 넓진 않다. 그래서 전국을 47지역으로 나눠 연령별 우수 선수를 뽑아 수시로 경쟁시키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다. 일부 선수들은 어린 시절 남자팀에서 경쟁을 했는데, 이게 뜻밖의 효과를 보기도 했다. 2010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 대표로 나섰던 야마구치 마미(37·은퇴)는 “어린 시절 체격적으로 우위인 남자들과 경합한 경험은 속도, 기술 측면에서 발전을 이끌었다”고 말한 바 있다. 2011년 월드컵 직전 세계 4위까지 끌어올리며 우승권에 진입한 일본은 결승에서 미국을 누르고 정상에 오른다. 조별리그에서 상대적 약체인 뉴질랜드, 멕시코를 만나고 토너먼트에서 독일에 신승하는 등 어느 정도 운도 따랐다.

2011년 월드컵 우승 기적에 열광

2011년 대지진으로 시름에 잠겼던 일본은 여자 대표팀 선전에 열광했고, 선수단은 그해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월드컵 우승은 선순환을 낳았는데, 이번 대회 득점 선두 미야자와 히나타(5골·마이나비 센다이), 2골을 넣은 우에키 리코(도쿄 베르디)는 모두 1999년생으로, 2011년 나데시코 재팬의 활약을 보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2011년 일본 선수들이 FIFA 월드컵 우승 후 자축하는 모습./로이터 뉴스1

일본은 2015년 월드컵 준우승을 하지만 2019년엔 16강서 탈락했다. 그러자 특유의 ‘위기의식’이 다시 발동했다. 일본은 2018년 여자 리그 프로화를 한 잉글랜드 사례를 참고해 프로리그 준비위원회를 꾸렸고, 아사히신문 등 매체들은 프로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약 2년의 준비를 거쳐 2021년 프로 WE리그를 출범시킨다. 겸업을 하지 않고 축구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늘어난 것이다. 일본에선 “이번 선전은 프로리그 출범 영향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월드컵 명단 23명 중 해외파가 9명, 자국 리그 선수가 14명이다. 미야자와, 우에키와 스페인전 골을 넣은 다나카 미나(29·아이낙 고베) 등이 WE리그 소속이다.

탄탄한 조직력에 유연한 전술 강점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탄탄한 조직력을 선보인다. 일본 사령탑은 이케다 후토시(53) 감독. 과거 연령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 선수들에 대한 이해가 높다. 그는 이번 월드컵 1년 전부터 선수들과 상의해 스리백(최종 수비 3명) 전술을 구축하는 등 소통을 중시한다.

일본은 선수 역량보다 ‘하나의 팀’을 중시한다. 이케다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A매치 90경기 37골을 기록한 베테랑 이와부치 마나(30)를 제외하는 과감한 명단 발표를 했다. 당시 이케다 감독은 “팀의 현 상황 등 복합적인 고려를 했고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고 말했다. ‘팀 재팬’은 유연했다. 일본은 잠비아, 코스타리카를 상대로는 50%가 넘는 높은 점유율을 가져가다 스페인을 만나선 점유율을 포기, 21%(스페인 68%·경합 11%)에 그쳤다. 대신 짠물 수비와 정확한 역습으로 완승을 이끌었다. 이에 “일본은 마치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클럽팀 같다”는 찬사가 나온다.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31일 스페인전을 4대0으로 마무리한 후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로이터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