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컵 8강 호주전 역전승 두 주역인 축구 국가대표 공격수 황희찬(왼쪽)과 손흥민. 이들은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 동점골과 역전 프리킥 결승골을 합작했다. 골을 넣은 다음엔 평소 선보이는 ‘먼산 세리머니’(황희찬)와 ‘비행기 세리머니’(손흥민)를 펼쳤다. /뉴스1·박재만 스포츠조선 기자

지난 3일 한국과 호주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8강전. 1-1로 맞선 연장 전반 14분 카타르 알자누브 스타디움이 떠나가는 듯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한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32·토트넘)이 찬 프리킥이 수비벽을 뚫고 그대로 골망을 가른 것. 골문과 20여m 거리. 9m 앞에 호주 수비수 4명이 벽을 쌓고 있었고 그중엔 키가 200㎝에 달하는 해리 수타(26·레스터시티)도 있었지만 공은 톱스핀이 걸린 듯 살짝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토트넘 동료 제임스 매디슨(28·잉글랜드)은 “위기 순간 해결하는 능력을 가진 소니”라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안지 포스테코글루(59) 토트넘 감독은 “그의 모습에 너무 기쁘다. 손흥민은 국가적인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괴물 손흥민은 정말 월드 클래스” “환상적인 프리킥”이란 반응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 순간 손흥민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선수가 있었다. ‘흥민이 형이 해냈어요’라는 찬사를 담은 행동. 주인공은 황희찬(28·울버햄프턴)이었다. 이 둘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자 관중은 더 큰 함성을 쏟아냈다. 그 프리킥을 이끌어낸 게 황희찬이었기 때문이다.

손-황 듀오는 이날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극적 역전승을 주도했다. 벼랑 끝에 매달린 한국 팀 양팔을 한쪽씩 붙잡고 끌어올린 셈이다. 후반 추가 시간 3분(93분), 손흥민이 호주 수비수 4명 사이로 돌파하다 얻어낸 페널티킥은 황희찬이 마무리했다. 원래 대표팀이 사전에 지정한 페널티킥 담당은 손흥민이지만 이번엔 황희찬이 자원했다. 손흥민은 경기를 마치고 “희찬 선수가 정말 자신 있는 모습으로 얘기했다. 누가 차든 상관없었다. 팀에 도움을 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희찬은 “조금이라도 부담이 있다면 페널티킥을 차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자신 있게 나가서 찼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출생지 같은 한국 축구 선봉장

이 듀오는 역대 최강이라 불리는 한국 축구 대표팀 공격 선봉에 서서 ‘좀비 축구’란 새 별명도 얻어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 리그 3차전에서도 후반 추가시간 역전 골을 합작하면서 역대 두 번째 월드컵 원정 16강을 완성한 주역들이다.

둘은 나란히 올 시즌 EPL(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주름잡는 ‘K사커(soccer)’ 주연들이기도 하다. 각각 득점 순위 4위(손흥민)와 7위(황희찬)에 자리하고 있다. 네 살 차이인 이들은 출생지가 강원 춘천시 후평동으로 같다. 면적 3.87㎢에 불과한 작은 동네에서 한국 축구 대들보들이 짧은 간격을 두고 첫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손흥민은 중학교를 인근 후평중에서 다니다 2학년에 원주 육민관중으로 전학 갔다. 황희찬은 태어난 직후 경기 부천으로 이사를 갔다. 황희찬은 일전에 “흥민이 형에게 나도 후평동 출신이라는 말을 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형도 그만큼 놀라웠던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좀비 축구’로 끈기와 저력 과시

클린스만호는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에 이어 이날도 후반 추가시간 동점 골을 넣으면서 ‘좀비 축구’ 위력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관짝을 몇 번씩 박차고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의미를 담았다. 미국 CBS 스포츠는 “매번 모두가 그들은 끝났다 했지만 그들은 또다시 포기하지 않고 증명해냈다, 우리는 이제 이 드라마에 적응할 때가 됐다”고 평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손흥민의 마술이 한국을 아시안컵 준결승에 올려놨다”고 했다. 토트넘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120분짜리 K드라마”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번 경기에서 여러 차례 ‘선방 쇼’를 보여준 베테랑 골키퍼 호주 매슈 라이언(32·알크마르)은 경기 전 “손흥민도 결국 인간일 뿐”이라며 기 죽지 않았지만, 경기 후 “그들은 우리에게 벌을 내렸고, 불운하게도 결과는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했다.

4강에서는 이번 대회 조별 리그 2차전에서 2대2로 비겼던 요르단을 만난다. 국제축구연맹(FIFA) 87위로, 한국(23위)에 비해 낮지만 4강까지 올라온 상대인 만큼 방심할 수는 없다.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7일 0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