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5000여 관중이 들어차 용광로처럼 끓어오르던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은 한국 대표팀의 연이은 득점포에 침묵에 휩싸였다. 대신 1000여 명 한국 원정 응원단이 신명 나게 부르는 ‘젊은 그대’가 경기장에 울려퍼졌다. 한국 축구가 오랜만에 웃었다.

형한테 맡겨 - 손흥민(가운데)이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C조 4차전에서 이강인 패스를 받아 왼발 슛으로 한국의 두 번째 골을 넣고 있다. 손흥민의 A매치 46번째 득점으로, 역대 2위 황선홍 감독(50골)과의 차이를 4골로 줄였다. /연합뉴스

황선홍(56) 임시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이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4차전 태국 원정 경기에서 3대0으로 승리했다. 카타르 아시안컵 졸전에 이어 지난 21일 태국과의 홈 경기에서도 1대1 무승부를 기록, 침체에 빠졌던 한국은 까다로운 태국 원정 경기를 완승으로 장식하며 한숨을 돌렸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7시 30분, 체감온도 35도(섭씨 30도)날씨.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 속에 시작한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 19분 이재성(32·마인츠)이 선취골을 뽑아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초반 관중석을 온통 파란색으로 채운 태국 홈 팬들 열성적인 응원에 기세가 눌리는 듯했던 한국은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 침투 패스를 받은 조규성(26·미트윌란)이 페널티 박스 오른쪽 지역을 드리블로 돌파한 다음 상대 골키퍼를 제치고 골문 안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태국 수비수가 이 공을 쳐내려고 했으나 쇄도하던 이재성과 엉키면서 공이 이재성 발을 맞고 골라인을 통과했다. 86번째 A매치에 출전한 이재성의 11호 골. 절반 이상 조규성 도움을 받은 행운의 골이었다. 지난 21일 태국과의 홈 경기(1대1 무승부)에서도 손흥민 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이재성은 이날 어려운 태국 원정에서 천금 같은 선취골을 뽑아냈다.

이강인 어시스트·손흥민 골… 태국에 3대0 승리 -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왼쪽)이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예선 태국과의 경기에서 이강인(오른쪽) 패스를 받아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한국은 태국을 3대0으로 꺾었다. '하극상 논란' 이후 A매치에서 거둔 첫 승이다. /대한축구협회

황선홍 감독은 후반 들어 백승호를 빼고 수비력이 뛰어난 박진섭(29·전북)을 중앙 미드필더로 투입하며 실점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은 이후에도 태국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후반 9분에 중앙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이 드리블 돌파를 하다 왼쪽 측면에 있던 손흥민(32·토트넘)에게 공을 내줬고, 손흥민이 수비수를 제친 뒤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이날 경기에 나서며 A매치 최다 출전 단독 5위(125경기)로 올라선 손흥민은 A매치 46호 골로 역대 2위 황선홍 감독(50골)과 차이를 4골로 줄였다. 1위는 차범근 58골이다. 골이 터지자 어시스트를 한 이강인이 손흥민에게 달려가 덥석 안겼다. 이른바 ‘탁구 게이트’의 당사자인 두 사람이 앙금을 떨쳐내고 하나가 된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후반 37분엔 박진섭이 A매치 데뷔골로 쐐기 득점을 뽑아냈다. 왼쪽 측면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김민재가 머리로 떨어뜨렸고, 이를 박진섭이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했다. 3-0이 되자 풀 죽은 태국 관중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이날 승리한 한국은 3승1무(승점 10)로 2위 중국(2승1무1패·승점 7)에 앞서 C조 선두를 내달리며 사실상 3차 예선행을 확정했다. 중국이 같은 날 싱가포르를 4대1로 꺾고 조 2위가 됐다. 태국이 1승1무2패(승점 4)로 3위. 월드컵 2차 예선에선 조 1·2위가 3차 예선에 오른다. 한국은 6월 6일 싱가포르 원정, 11일 중국과 홈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3위와 승점 차가 6이라 남은 2경기를 다 크게 지지 않는 이상 3차 예선으로 향한다.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4차전

한국    3 ― 0    태국

▲전19 이재성 ▲후9 손흥민 ▲후37 박진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