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1차전 대한민국과 팔레스타인 경기에서 손흥민이 슛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FIFA 랭킹 23위)과 팔레스타인(96위)의 2026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 B조 1차전이 열린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시작에 앞서 선수단 소개 시간에 홍명보(55) 감독 이름이 불리자 일부 팬들이 ‘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지난 7월 대한축구협회가 전력강화위원회 추천 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사령탑 선임을 발표하면서 불거진 논란 연장선상이었다.

그 여파로 작년 11월 싱가포르, 지난 3월 태국, 6월 중국전에 6만4000여 관중이 들어차며 매진을 기록했던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이날 5만9579명이 입장하며 4경기 만에 만원 관중에 실패했다. 경기에 앞서 ‘한국 축구의 암흑 시대’ ‘선수는 1류, 회장은?’ 등 걸개를 내건 붉은악마 응원단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겨냥해 “정몽규 나가!”를 입을 모아 외쳤다. 경기가 시작하고도 전광판에 홍 감독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야유가 쏟아졌고, ‘홍명보 나가!”란 구호도 나왔다.

이날 홍명보호는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시원한 승리가 필요했지만, 결과는 답답한 0대0 무승부였다.

한국은 슈팅 16개를 쏟아붓고도 한 수 아래 상대로 평가받는 팔레스타인 골문을 열지 못했다. 이라크와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홈에서 열린 첫 경기를 비기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가는 길이 험난해졌다. 이번 3차 예선에선 조 2위에 들어야 본선 직행 티켓을 따낸다. 불안한 출발을 한 한국은 10일 오후 11시 오만 무스카트에서 원정 경기로 B조 2차전을 벌인다.

홍명보 감독은 이날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1무 2패로 탈락한 이후 10년 만에 대표팀을 지휘했다. 손흥민(토트넘)을 왼쪽,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을 오른쪽, 주민규(울산)를 최전방 공격수로 내세웠다. 손흥민은 브라질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홍명보호에서 선발로 나섰다. 올 시즌 7도움을 올리며 강원의 선두 질주를 이끄는 황문기가 주전 오른쪽 수비수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한국은 초반부터 팔레스타인의 조직적 수비에 고전했다. 팔레스타인은 공을 빼앗으면 빠른 역습으로 전환해 한국의 골문을 위협했다. 반면 한국은 단조로운 전술로 패스가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서 공격이 번번이 상대에게 읽혔다.

한국은 이강인의 개인 능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전반 41분 황인범과 패스를 주고받은 이강인이 시원한 돌파로 골키퍼와 맞서는 상황을 맞았지만 오른발 슈팅이 아쉽게 골키퍼에 걸렸다. 2분 뒤엔 이강인의 감각적 패스를 받은 황인범이 절묘한 트래핑으로 수비를 제친 뒤 왼발 슛을 날렸으나 옆 그물을 때렸다.

후반 홍명보 감독은 오세훈(마치다)과 황희찬(울버햄프턴)을 차례로 투입하며 변화를 꾀했다.

후반 15분 손흥민이 완벽하게 내준 공을 이강인이 왼발 슈팅으로 연결한 게 높게 뜨면서 팬들 탄식을 자아냈다. 시간이 흐르자 2019 폴란드 U-20 월드컵 준우승 주역 이강인과 오세훈 콤비 플레이가 살아났다. 당시 대회에서 이강인의 크로스를 오세훈이 날카로운 헤더로 연결한 장면이 많았는데 한국은 후반 18분과 38분 그 장면을 재현했으나 번번이 라미 하다마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초조함이 더하던 후반 42분, 이강인의 절묘한 롱 패스를 전방 침투한 손흥민이 잡았다. 손흥민이 골키퍼까지 제치고 날린 오른발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오며 한국은 천금 같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한국은 오히려 추가 시간 팔레스타인에 역습을 허용하며 실점할 뻔했지만, 조현우가 슈팅을 잘 막아냈다.

종료 순간이 다가오자 경기장엔 다시 한번 “홍명보 나가!”가 메아리쳤다. 이강인 개인 기량으로 많은 찬스를 만들었으나 조직적인 움직임은 부족했던 경기였다.

손흥민은 경기 후 홍 감독에 대해 야유가 나왔다는 지적에 대해 “팬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란 걸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미 결정이 난 일이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에서 팬들의 진심 어린 응원이 한발 더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염치 없지만 많은 응원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전반이 특히 생각보다 나빴다”며 “팬들 야유를 이해하고, 앞으로 견뎌나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