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넥슨 아이콘 매치에 참가한 선수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넥슨

브라질의 2002 월드컵 우승 주역 히바우두(52)와 포르투갈 축구 전설 루이스 피구(52), 프랑스 스타 티에리 앙리(47)가 한 팀에서 공격수로 호흡을 맞춘다면 어떨까. 그들을 막아서는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황금기 주역 중앙 수비 듀오 리오 퍼디낸드(46)와 네마냐 비디치(43), 이탈리아와 스페인 축구 전성기를 이끈 수비수 파비오 칸나바로(51), 카를레스 푸욜(46)이고. 더구나 그 경기서 서울에서 이뤄진다면.

이런 상상 속 축구 게임 속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이 서울 상암에서 펼쳐졌다. 이들과 더불어 알레산드로 델피에로(50·이탈리아), 안드리 셰우첸코(48·우크라이나), 마이클 오언(45·잉글랜드), 안드레아 피를로(45·이탈리아), 클라렌스 세이도르프(48·네덜란드), 레오나르도 보누치(37·이탈리아) 등 세계 축구를 주름잡은 전설들도 모였다. 그뿐인가. 한국 축구 레전드로 꼽히는 박지성(43)과 안정환(48), 이영표(47), 김병지(54)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국내외 축구 전설 35명이 2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공격수 팀 ‘FC스피어(창)’와 수비수 팀 ‘실드(방패) 유나이티드’로 나눠 특별 경기를 치렀다. 해외 스타 25명에 국내 스타 10명이었다.

20일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히바우두(왼쪽)의 드리블을 네마냐 비디치가 막아내고 있다. /넥슨

이 이색 경기는 인기 온라인 축구 게임 ‘FC온라인’ ‘FC모바일’을 만든 국내 기업 넥슨이 주최했다. 넥슨 관계자는 “넥슨 30년 역사상 역대 최고 (행사) 예산이 투입됐다”고 전했다. 넥슨은 “게임 이용자 다수가 실제 축구에도 관심이 크기 때문에, 게임과 실제 축구를 연계한 행사를 통해 축구 산업에 기여하고 저변을 확대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세계 축구 최고 권위 상인 발롱도르(Ballon d’Or)를 받은 선수만 피구, 오언, 히바우두, 카카(42·브라질), 셰우첸코, 칸나바로 등 6명. 현역 시절 이들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었던 국내 축구 팬들은 추억 속 스타들을 ‘알현’하기 위해 상암으로 몰려들었다. 4만~30만원 입장권은 예매 시작 1시간 만에 동났고, 경기 당일 6만4210명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한국을 찾은 축구 스타들은 경기를 앞두고 고깃집을 찾고, 한복을 입어보는 등 한국 문화도 즐겼다. 앙리와 셰우첸코, 세이도르프, 카카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비빔대왕’ 유비빔씨를 초청해 비빔밥을 맛봤고, 델피에로와 피를로, 칸나바로, 보누치는 ‘흑백요리사’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 권성준씨가 운영하는 식당을 들렀다. 푸욜과 디에고 포를란(45·우루과이), 하비에르 마스체라노(40·아르헨티나), 카를로스 테베스(40·아르헨티나)는 여의도 한 식당에서 돼지고기 구이를 먹었고, 피구와 에덴 아자르(33·벨기에), 디디에 드로그바(44·코트디부아르), 마루안 펠라이니(37·벨기에)도 한국식 바비큐를 경험했다. 박지성과 맨유에서 함께 뛰었던 퍼디낸드와 비디치, 에드윈 반 데 사르(54·네덜란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43·불가리아)는 한복을 입어보는 체험을 했다. 퍼디낸드는 인스타그램에 “누가 더 잘 입었나”라고 썼다.

이들은 19일엔 공격수와 수비수 일대일 대결, 파워 슈팅 대결 등 이벤트 행사를 선보였고, 20일엔 본 경기를 치렀다. 실드 팀이 스피어 팀을 4대1로 이겼다. 나이가 든 탓에 현역 시절 같은 날렵한 몸놀림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기본기만은 녹슬지 않았다. 실드 팀 야야 투레(41·코트디부아르), 세이도르프, 박주호(37), 마스체라노가 골을 넣었다. 카카는 전매특허인 ‘치고 달리기’ 기술을 여러 차례 보여주며 관중들 탄성을 자아냈다. 피를로는 중원에서 전방으로 수차례 정확한 긴 패스를 보냈다. 드로그바는 ‘본업’인 공격 대신 수비수로 나서 안정감을 보였다. 골키퍼 김병지는 공을 몰고 직접 전진하는 ‘아찔한’ 그 플레이를 수차례 재현해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너무 앞으로 나왔다가 세이도르프의 장거리 슛에 골을 헌납하기도 했다.

박지성(가운데)이 20일 넥슨 아이콘 매치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넥슨

경기장 분위기는 스피어 팀 코치로 벤치에 있던 박지성이 후반 40분 교체 투입될 때 절정을 찍었다. 그는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당초 이날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는데, 경기에 뛰기 위해 몸을 풀자 환호가 터졌다. 관중들은 일제히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위 숭 빠레~”로 통하는 현역 시절 응원가도 다 함께 불렀다. 스피어 팀 동료들은 박지성 투입 직전 셰우첸코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박지성이 차도록 양보했고, 박지성은 그라운드에 들어오자마자 득점에 성공했다.

이번 행사는 세계적인 스타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앙리는 “과거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필드 밖에선 좋은 관계를 유지한 선수들을 이번 기회에 다시 만나서 기쁘다”고 했고, 베르바토프는 “현역 때 동료로 뛴 선수, 상대로 뛴 선수들과 함께 했다. 오랜만에 만나서 많은 대화와 농담을 주고받아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다들 “즐거운 이틀이었다”는 반응이다. 이들을 지켜본 한국 축구 팬들도 같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