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골퍼 전인지가 전시회를 앞두고 15일 서울 본화랑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어 박선미 작가와 공동작업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골프화 대신 구두를 신고, 골프 웨어 대신 검은 정장을 입었다. 프로 골퍼 전인지(28)가 갤러리에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날이다. “대회장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스케치북과 색연필 들고 다니며 영감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를 했어요.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으니, 작업하는 동안 진정성을 더욱 담으려 했죠.”

전인지는 오는 17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서울 종로구 본화랑에서 박선미 작가와 함께 전시회 ‘앵무새, 덤보를 만나다’를 연다. 박선미 작가는 주로 앵무새를 매개체로 삼아 철학·인문학적 주제를 유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왔다. 늘 호기심 많고 질문을 쏟아내는 전인지는 애니메이션에서 큰 귀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아기 코끼리 ‘덤보’를 별명으로 갖고 있다. ‘되찾은 나’ ‘호기심의 나래’ 등 두 사람이 공동 작업한 작품과 개인 작품들이 전시에 소개된다.

15일 기자 간담회를 연 전인지는 박선미 작가를 지난해 12월 작가의 개인전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얼마 뒤 작업실에 초대받아 8시간 동안 그림을 그렸는데, 집에 와서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의심이 많고 마음 상태가 밝지 않은 시기였어요. 그래서인지 제 그림도 어둡게 느껴졌죠.” 다음 날 전인지가 박선미 작가에게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을까요”라고 연락하면서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됐다. 박선미 작가는 “전인지는 관찰력이 뛰어나 드로잉에 재능이 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을 시작한 건 지난 5월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전인지는 한국에 올 때마다 틈틈이 작업실을 찾았다. 그러다 지난 6월 메이저 대회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3년 8개월간의 긴 슬럼프를 끝냈다. 그는 LPGA 투어 통산 4승 중 3승을 메이저 대회에서 달성했다.

올 시즌을 상금 랭킹 3위(267만3860달러·약 35억원)로 마무리한 전인지는 “선수로서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며 “미술 작업 덕분에, 코스에 돌아갔을 때 더욱 의욕 넘치고 반짝이는 눈으로 골프를 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온종일 골프만 생각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골프 이외의 취미와 화제를 갖고 세상을 더 크게 보게 됐다는 것이다. “공동 작업을 위해 작가님과 차 마시면서 생각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대화하고 나면 마치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 들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전시회에 걸린 전인지의 작품마다 크고 작은 물음표들이 눈에 띈다. 주어진 상황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으로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을 녹여냈다고 한다. 그는 “선수 생활 하면서 느낀 것들, 그림에 담아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며 “골프와 밸런스를 잘 맞추면서 기회 될 때마다 미술 작업을 이어가 긍정 에너지와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전시회 수익금은 그가 운영하는 장학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