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다승왕 임진희(25)는 3년 전만 해도 2부 투어 선수였다. 2018년 1부 투어에 데뷔했으나 2년 연속 상금 랭킹 60위 밖으로 밀려 2020년 2부 투어로 떨어졌다. “1부 투어 첫해에는 빠른 그린 스피드, 처음 보는 코스 세팅이 무서웠어요. 겁먹어서 하루 종일 퍼트를 세게 못 치고, 페어웨이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2부 투어 내려가면서 느꼈죠. 마음가짐도, 실력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짜 정점은 미국에서 찍을 거예요 - 임진희가 지난 11일 KLPGA 투어 2023시즌 최종전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2라운드 2번 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시즌 4번째 우승을 차지해 다승왕에 올랐다. /KLPGA

1부 투어에 복귀한 2021년 ‘상금 3억원과 첫 우승’을 목표로 잡았다. 1승을 올렸고 시즌 상금 3억1253만원을 벌었다. 당시 4라운드를 공동 13위로 출발해 1타 차 우승으로 끝낸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임진희라는 이름으로 여러분 앞에 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해 얼떨떨하지만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2022년에 추가한 우승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선두였다. “첫 우승은 행운이 따랐다는 시선 때문에 솔직히 불안했어요. 지난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해내곤 자신감을 얻었죠.”

2023년 목표는 ‘상금 10억원과 다승’이었다. 4번 우승해 시즌 상금 11억4583만원(투어 2위)을 받았다. 최종전에선 2위와 5타 차, 3위와 13타 차로 압도적 우승을 차지했다. 어느덧 통산 6승을 쌓아 정상급 스타로 발돋움한 그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달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매그놀리아 그로브 코스에서 개막하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Q시리즈에 나선다. 최근 미국으로 떠나기 전 통화에서 임진희는 말했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된다잖아요.”

임진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제주에서 방과 후 수업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중학교 땐 대회에는 출전했지만 진로를 정한 건 아니었다. 함평골프고에 진학하면서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출발이 상대적으로 늦었고, 국가대표·상비군 등 엘리트 코스와 거리가 멀었다. 연습량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LPGA 투어 Q시리즈 출전을 앞두고 28일(현지 시각) 포즈를 취한 임진희./AFP 연합뉴스

그는 “항상 꿈을 가지고, 이룰 때까진 남들한텐 비밀로 한다”며 “목표를 크게 세우고, 지금 내게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채워나갈지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다”고 했다. “필요한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빨리 효과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

처음엔 비거리 늘리는 훈련에 집중하며 몸무게도 늘렸다. 그 결과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019년 234.27야드(투어 70위)에서 2022년 246.03야드(13위)로 늘었다. 그러다 보니 퍼팅을 보완할 필요성을 느껴 이번엔 퍼팅에 집중했다. 평균 퍼팅이 지난해 30.32개(27위)에서 올해 29.80개(11위)로 향상됐다. “시간도, 생각도 한쪽에 치우치면 다른 쪽에 모자라는 부분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봐요.” 올 시즌을 앞두고는 스윙, 코스 매니지먼트 등 분야별 코치를 3명으로 늘렸다. 목표 달성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퍼팅에 집중하니 비거리가 줄어 올겨울 다시 보완할 계획이다.

임진희는 “골프는 나만 잘하면 되기 때문에 다른 단체 종목보다 노력의 대가를 많이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골프에 전념하려고 그 흔한 소셜미디어도 만들지 않았다. 팬클럽 ‘지니어스(진희+us)’는 ‘노력하는 천재(genius)’라는 문구를 현수막에 적어 응원한다. “미국 무대에 도전하는 모든 선수들은 자신이 세계에서 제일 잘 치는 선수가 되고 싶어서 가보려는 것 아닐까요. 저도 그래요.” 한 계단씩 밟아 올라온 과정이 자신감의 원천이다. “이번에도 차근차근 해봐야죠. 약간 모자랄 때가 가장 노력할 수 있을 때라고 하잖아요.”

이번 LPGA 투어 Q시리즈에는 KLPGA 투어 통산 5승을 쌓은 이소미(24)와 3승을 올린 성유진(23), 1승의 홍정민(21) 등도 도전한다. 지난해 US 여자 아마추어를 제패한 세계 아마추어 랭킹 3위 바바 사키(18·일본) 등도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