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의 한(恨)을 풀기 위한 ‘삼사자 군단(Three Lions)’의 포효가 시작됐다. 삼사자 군단은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전쟁 당시 방패에 새긴 상징으로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 대표팀의 애칭이기도 하다. 팀 엠블럼 안에 빨간 혀와 발톱을 지닌 세 마리의 사자가 있는 데서 유래했다.

30일 오전(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 웨일스와 잉글랜드 경기. 잉글랜드 마커스 래시퍼드가 환상적인 오버헤드 킥을 차고 있다. 2022.11.30/연합뉴스

잉글랜드(FIFA 랭킹 5위)는 지난달 30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웨일스(19위)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B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3대0으로 승리하며 조 1위(2승1무·승점 7)로 16강에 진출했다. 오는 5일 A조 2위인 세네갈(18위)과 8강 진출을 위한 한판 승부를 벌인다.

월드컵 사상 첫 ‘영국 더비’로 관심을 모았던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경기는 일방적이었다. 잉글랜드는 골잡이 마커스 래시퍼드(25·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필 포든(22·맨체스터 시티)을 앞세워 골문을 위협했다. 웨일스는 개러스 베일(33·로스앤젤레스FC)의 지휘 아래 빠른 역습과 탄탄한 조직력으로 반전을 꾀했다.

전반을 득점 없이 비긴 양팀의 균형을 깬 선수는 래시퍼드였다. 그는 후반 5분 웨일스의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골대 오른쪽 상단 구석으로 감아 찼다. 상대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손쓸 새도 없이 골망으로 빨려 들어갔다. 래시퍼드의 득점 세리머니도 의미가 있었다. 그는 팀 동료들과 함께 환호한 뒤 감정을 추스르고 혼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두 검지를 하늘로 치켜세운 후 눈을 감고 5초가량 혼잣말을 했다. 래시퍼드는 경기 후 “며칠 전 오랜 기간 암투병을 했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면서 “잉글랜드를 응원한 친구를 위해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했다”고 고백했다.

잉글랜드 거리응원 -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B조 3차전이 열린 30일, 영국 맨체스터시에서 길거리 응원에 나선 잉글랜드 팬들이 킥오프 전 맥주 캔을 들고 소리치며 흥을 돋우고 있다. 잉글랜드는 웨일스를 3대0으로 누르고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잉글랜드는 기세를 몰아 두 골을 더 터뜨렸다. 후반 6분 해리 케인(29·토트넘)이 오른쪽 측면에서 보낸 땅볼 패스를 포든이 왼발로 마무리했고, 후반 23분엔 후방에서 올라온 롱패스를 받은 래시퍼드가 화려한 발재간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린 채 왼발로 득점포를 가동하며 멀티골을 완성했다.

래시퍼드는 경기 최우수선수 격인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됐다. 그는 “오늘과 같은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난 축구를 한다”면서 “16강에 진출해 매우 기쁘다. 우리 팀은 (우승) 야망을 품고 카타르에 왔다”고 말했다.

잉글랜드는 안방에서 열린 1966년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아직 월드컵 트로피와 인연이 없다. 결승전을 맛 본 적도 없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오른 4위가 최고 성적이다.

한편, 1958년 이후 64년 만에 월드컵 무대에 나선 웨일스는 승리 없이 조 최하위(1무2패·승점 1)로 대회를 마감했다. 주장 베일은 “실망이 큰 것은 맞지만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면서 “팀이 원한다면 계속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며 은퇴설을 잠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