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Moneyball). 빌리 빈(59) 미 프로야구(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부사장이 1998년 애슬레틱스 단장이 되면서 추구한 ‘저비용 고효율’ 야구를 말한다. 그는 타율·타점 대신 출루율·장타율 등 당시 주목도가 낮았던 기록을 중시해 시장에서 저평가된 선수를 모아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1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다.

한국마사회의 경주마 닉스고(Knicks Go)가 지난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델마 경마장에서 열린 브리더스컵 클래식에서 질주하는 모습. 닉스고는 세계 최고의 경마 경주로 꼽히는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올 시즌 4연승을 달렸고, 세계 경주마 랭킹 종합 1위에도 올랐다. /AFP 연합뉴스

경주마 닉스고(Knicks Go)도 저비용 고효율이란 점에서 머니볼을 떠올리게 한다. 한국마사회가 2017년 미국 킨랜드 경매에서 8만7000달러(약 1억원)에 산 5세 수말이다. 2018년 경마에 데뷔, 작년까지 3년 동안 5차례 우승했다. 올 시즌엔 7차례 나서 5번 1위로 골인하며 전성기를 뽐냈다. 지난 7일 세계 경마 올스타전으로 불리는 브리더스컵 클래식에서 우승하는 등 최근 4연승을 달리는 중이다. 지난 11일 국제경마연맹(IFHA)이 발표한 세계 경주마 랭킹에서 128점을 받아 2위 그룹 말들을 1점 차로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닉스고가 지금까지 24차례 대회에 출전해 10번 우승하면서 벌어들인 상금은 총 867만3135달러(약 102억원). 최초 구입비의 100배를 넘는다. ‘머니볼’이 아닌 ‘머니호스(Moneyhorse)’다.

◇순발력 타고난 중·장거리 스타일

닉스고는 마사회가 2015년에 개발한 케이닉스(K-Nicks)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됐다. 케이닉스에는 작년 기준 국내와 해외 말 6500여 마리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가 있다. 여기에는 마사회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말을 살 때 검수 과정에서 확보한 말 갈기, 국내 경주마 대회 도핑 검사 때 뽑은 혈액 등으로 분석한 유전자 정보가 담겨 있다. 이 유전자 정보와 경주 말 혈통, 대회 성적과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말의 경주 능력을 추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주마의 스피드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 종류와 대회 성적 간 관계를 모형화하는 식이다. 이진우 마사회 해외종축개발TF 부장은 “닉스고는 부마(父馬)가 최고 혈통이 아닌 데다 우수한 경주마까지 생산하지 못해 저평가됐다”며 “구매 후보로 올려놓고 검수할 때 갈기에서 유전자 정보를 뽑아 케이닉스에 돌려봤는데 경주 능력이 평균보다 40% 좋았다. 상위 5% 수준이라 선택했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에서 태어난 닉스고는 다른 말보다 심장이 크고 순발력도 타고났다. 미국에서 노련한 조교사 밑에서 훈련받았는데 강건한 체질답게 강도 높은 훈련도 잘 소화했다. 브래드 콕스 조교사는 “닉스고가 달리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행복해했다”고 말했다. 닉스고는 경주마의 스피드를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베이어 지수’에서도 최상위 기록을 갖고 있다. 선행 능력이 뛰어나 경기 초반 앞으로 치고 나가서 승기를 잡는 스타일이다. 닉스고는 브리더스컵 대회에서도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앞으로 달려나가 선두로 올라섰다. 마지막 코너를 돌 때 닉스고의 체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경쟁마들이 막판 스퍼트에 나섰다. 하지만 닉스고는 스피드를 계속 유지하면서 끝내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다. 닉스고의 스피드 유전자 유형은 중·장거리형이다. 닉스고가 우승한 대회 평균 거리가 1766m로 1600m 이상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브리더스컵 대회도 경주 거리가 2000m였다.

◇은퇴 후 자손 우승하면 가치 더욱 상승

닉스고는 내년 1월 은퇴해 미국에서 씨수말로 활동할 예정이다. 브리더스컵 우승 이전 예상 교배료가 회당 1만5000달러였는데 현재 3만달러(약 3500만원)로 두 배가 됐다. 교배 횟수(약 170회)에 자마 생산 확률(75%) 등을 고려하면 씨수말 활동 첫해 교배료 예상 수입은 약 40억원. 닉스고의 자마(子馬)가 만 2세가 되는 2024년 여름부터 경주마로 데뷔해 우승할 경우 닉스고의 교배료는 더 올라갈 전망이다. 세계 최고 씨수말로 평가받는 ‘타핏’은 한때 1회 교배료가 30만달러(약 3억5000만원)에 달했다. 닉스고는 2027년에는 국내에 들어와 국내 종자 개량을 책임질 예정이다. 이진우 부장은 “닉스고를 국내 농가 씨암말과 값싸게 교배해 양질의 말을 생산하는 게 케이닉스의 최종 목표”라며 “닉스고 자마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전 세계 마주들의 관심을 끌게 되고, 국산 말 수출도 덩달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