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강도의 습격을 받고 생명의 위협까지 당했던 여자 테니스 선수 페트라 크비토바(32·체코·세계랭킹 21위)가 자신의 코치와 약혼했다.

크비토바는 25일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코치 지리 바넥(44·체코)과 약혼한 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여러분과 행복한 소식 하나를 공유하고 싶다. 나는 특별한 곳에서 ‘예스(Yes)’라고 했다”며 커플의 다정한 사진을 올렸다. 크비토바의 ‘예스’는 그가 바넥의 청혼을 수락했다는 의미다.

페트라 크비토바(오른쪽)와 코치 지리 바넥이 윔블던 코트를 배경으로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비토바 인스타그램

크비토바가 말한 ‘특별한 곳’은 다름 아닌 윔블던 코트다. 크비토바는 2011년과 2014년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우승했다. 특히 21살이던 2011년엔 남녀를 통틀어 1990년대생으로서는 최초로 메이저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테니스계에 ‘90년대생’의 등장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페트라 크비토바가 2011년 윔블던에서 우승한 직후 시상식에서 웃고 있다. /Getty Images

또 당시 크비토바는 체코 출신의 테니스 전설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66) 이후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첫 왼손잡이 선수가 됐다. 나브라틸로바는 공교롭게도 크비토바가 태어난 1990년에 커리어 마지막 윔블던 트로피를 쟁취했다.

◇승승장구하다 2016년에 강도 습격,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

크비토바는 2007년에 여자프로테니스(WTA)에 데뷔해 강력한 왼손 포핸드 스트로크를 앞세워 체코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특히 2011년엔 첫 메이저 대회(윔블던) 우승, WTA 챔피언십 우승이라는 위업을 통해 세계 2위까지 올랐다. 연말엔 여자 테니스 국가대항전인 당시 페드 컵(Fed Cup, 지금은 빌리 진 킹 컵)에서 체코의 우승도 이끌었다. 체코는 독립국이 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페드 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기쁨을 누렸다. 이후 크비토바는 2014년 윔블던에서 다시 한 번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선 체코 대표로 출전해 여자 단식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승승장구하던 크비토바에겐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2016년 12월 체코의 자택에 침입해 칼을 휘두른 괴한을 맨몸으로 막다가 왼손을 크게 다쳤다. 손가락뼈가 드러날 정도로 자상(刺傷)을 입어 3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또 이때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한 정신 상담과 치료도 받았다.

특히 왼손잡이 선수가 왼손 신경을 다쳐 크비토바는 기량 하락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듬해 5월 열린 프랑스 오픈에서 팬들의 응원 속에 다시 코트에 섰지만, 2회전에서 탈락했다. 한동안 2017년 US오픈 8강이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일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19년 호주 오픈에서 건재 과시, 올해 US 오픈 출격 앞두고 약혼 경사

2018년엔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도 3회전을 넘지 못한 크비토바는 2019년 호주 오픈 결승에 오르며 건재를 과시했다. 당시 크비토바는 호주 오픈 4강 진출을 확정 짓고 “이렇게 큰 경기장에서 다시 경기할 수 있을지 몰랐다”면서 “왼손을 다친 이후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항상 이기고 싶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지면 상처를 받았지만, 결국은 인생 자체가 승리”라고 울먹이며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결승에선 나오미 오사카에게 혈투 끝에 세트스코어 1대2(6-7<2-7> 7-5 4-6)로 패배했다.

이후 2020년엔 프랑스 오픈 준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고 세계 8위로 한 해를 마감했다. 2021년엔 도쿄 올림픽에서 농구선수 토마스 사토란스키와 함께 체코의 공동 기수(旗手)로 나서는 영예도 누렸다.

페트라 크비토바(기수 왼쪽)와 토마스 사토란스키가 체코 국기를 들고 2020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있다. /크비토바 트위터

크비토바는 오는 29일부터 시작하는 US 오픈을 앞두고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열린 WTA 웨스턴&서던 오픈에서 준우승을 하는 등 예열을 마쳤다. 여기에 2016년부터 함께한 코치 바넥과 약혼까지 하는 경사까지 생겼다. 바넥 코치는 원래 체코 동료인 카롤리나 플리스코바를 가르치다 2016년부터 크비토바의 코치를 맡았는데, 지난해 8월 이후 둘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랑의 힘까지 얻은 크비토바는 뉴욕에 얼마나 머무를 수 있을까. 크비토바는 2004년생 신예인 러시아의 에리카 안드레예바를 상대로 30일에 1회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