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7일 동안 태즈메이니아 오지 오버랜드 트레킹 코스를 완주했다. 하지만 아찔했던 순간도 몇차례 있었다.

원정 때마다 느끼지만 세상에 안전한 길은 없다는 것이다. 오버랜드 트레킹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지를 걷다가도 주의 하지 않으면 부상으로 직결된다. 특히, 야간 산행은 위험을 가중시켰다. 닷새째 숙소인 파인밸리헛으로 야간 이동 중 미끄러져 곤두박질치면서 순간 큰일 났구나 싶었다. 안경은 어디론가 날아갔고 이마를 바닥에 쳐박았다. 모자 덕분에 화를 면했다. 모자 챙이 갈라질 정도였다. 이마에 피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큰 상처는 아니었다.

이처럼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오직 헤드랜턴에 의지 하지만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 곳곳엔 위험 요소가 있다. 촉촉이 젖어있는 나무 뿌리를 밟는 순간 순식간에 미끄러졌다. 누구든 예외가 없다. 메인 배낭에 보조배낭을 멘 채 통과하는 숲길은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뭇가지에 배낭이 걸리기 일쑤다.

오버랜드 트레킹 종주에 나선 오지탐사대 대원들. 대원들은 단순 트레킹이 아닌 반블러프,오사, 아크로폴리스 산 등 매일 새로운 루트로 사이드 루트 공격을 감행했다. 대원들은 가급적 새벽 산행을 하며 정상 등정을 위한 기운을 모았다. 정병선 기자

트레킹 하는 동안 트랙에 익숙해지는 것도 기술이고 능력이다. 트랙 환경에 적응해야 결국 즐거움으로 남는다. 이런 이유에서 오버랜드 트레킹은 일반인에겐 결코 만만하지 않는 곳이었다. 체력 훈련이 되지 않았거나, 트레킹이나 등반 정보가 완벽하지 않거나, 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는다면 분명 낭패를 당한다.

오지탐사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젊은 대원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데 익숙해 있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오지탐사대가 영락없이 그런 셈이다

반블러프는 바위의 연속이다. 날카로운 바위를 타고 결국 정상 등정에 성공한 오지탐사대원들. 왼쪽부터 김서현, 문기빈, 윤태종 대원. 정병선 기자

기자도 북극해 툰드라, 유라시아자전거원정, 시베리아횡단 취재 등 다양한 경험에다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ABC·4130m), 에베레스트 트레킹(5400m), 랑탕 트레킹(5500m) 등 네팔의 3대 트레킹 코스를 완주했다. 하지만 오버랜드 트레킹은 기존의 원정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버랜드 트레킹은 네팔처럼 전문 짐꾼(포터)도 없고, 쿡(요리사)도 없고, 잠자는 숙소격인 헛(Hut) 외엔 아무것도 없다. 히말라야의 롯지다운 롯지도 없다. 자연보호를 우선한다지만 지나칠 정도로 트레커들에게 혹독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인터넷 등 외부와의 통신이 차단된 곳에서 오직 원시 자연 그대로를 체험하며 걷는 것이다. 오버랜드 트레킹은 이런 묘미를 느끼기 위해 세계 곳곳의 트레커들이 찾아온다.

겨울 산행은 눈이 내리는 것이 축복이지만 정상 등정에는 방해가 된다. 정상 공격에 나선 대원들이 진흙탕길을 피해가고 있다. 정병선 기자

오지탐사대는 먹고 자는 문제 등 생존에 관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대원들은 가스 버너를 이용해 밥을 하고, 국을 만들고, 오트밀 스프, 미숫가루 등 별걸 다 해 먹었다. 식량을 담당한 김준희 대원은 매일 10명의 대원들이 먹을 거리를 장만하느라 애를 많이 썼다.

원정 동안 음식 수준은 별로였다. 기자가 군대에서 먹는 것보다 열악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역대 원정 경험 중 최악이었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 열악한 환경속에서 대원들은 서로를 독려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등 깊은 동료애를 과시했다. 하나된 팀의 모습이었다.

이런 환경에선 오직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을 믿고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이동 중 에너지 섭취도 스스로 해야 했다. 30kg 무게 배낭을 메고 하루 20km 이상 이동하는 날은 대원들의 보통 의지가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오사산 등정은 이처럼 밀림지역을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라 항상 안전에 신경써야 한다. 이종상 대원. 정병선 기자

대한산악연맹이 파견한 오지탐사대는 트레킹이 목적이 아니었다. 겨울 설산 등반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기도 했다. 7일 동안 눈덮인 산 3개를 올랐다. 위험한 고비가 없을 리 만무했다. 탐사대는 이틀에 한번 꼴로 설산 등정에 나섰다.

2일차 반블러프(Mt Barn bluff·1559m), 4일차 오사(Mt Ossa·1617m), 6일째 아크로폴리스(Mt The Acropolis·1417m)를 공격했다.

오사산을 오르는 과정도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김선화 대장이 눈길을 뚫고 전진하는 모습. 정병선 기자

대원들의 첫 공격 대상은 반블러프였다. 특이한 껍질을 자랑하는 유칼립투스 숲을 빠져나와 광활한 평원속에 드러난 바위 봉우리 반블러프는 바위로 된 산이었다. 하지만 정상으로 갈수록 눈덮인 구간이 산재해 보기보다는 정상 공격에 주의를 요했다.

방심하는 순간 바위 틈에 빠지거나 낭떠러지로 추락할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 널려있어 긴장을 유지해야 했다. 현지 가이드는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오르는 것은 위험하다며 걱정했다. 다행히 눈이 내리지 않아 대원 모두 반블러프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정상에는 거센 바람이 몰아쳤지만 견딜만 했다.

하지만 오사와 아크로폴리스는 설산 등반 장비 부족과 정상 부근의 적설량이 1~2m 수준이어서 안전을 이유로 정상 공격을 포기했다.

오버랜드 트랙의 상징인 오사산 정상 부근에는 눈이 2m 가량 쌓여 있어 등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원들의 아쉬움이 컸다. 정병선 기자

4일차 오버랜드 트랙 최고봉 오사산 공격은 아쉬움을 남겼다. 오버랜드 트랙을 찾는 트레커들 대부분이 오사산 정상을 노리지만 겨울 눈덮인 산 정상에 선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지탐사대원들은 태즈메이니아 최고봉에 도전했다가 오히려 물러서는 법을 배웠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안전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오버랜드 최고봉 오사산(Mt Ossa) 정상 공격에 실패했지만 대원들은 반대편 삿갓처럼 생긴 펠리온산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한산악연맹은 창립 60주년을 맞아 청소년들의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오지탐사대를 호주의 오지 중 오지 오버랜드로 보냈다. 김선화 대장(가운데), 하태웅 지도위원(오른쪽). 정병선 기자

여름이면 야생화가 만발, 마치 유럽 왕궁의 정원을 연상시킨다는 오사산 정상의 뷰는 그냥 환상에 담아두기로 했다. 대신 원정대가 서 있는 반대편에 삿갓처럼 솟은 펠리온(Mt Pelion) 서봉이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 대원들의 아쉬움을 달래줬다.

오지탐사대의 3차 등정 목표인 아크로폴리스산을 오르고 있다. 정병선 기자

오사산 등정은 정상 200m 정도를 앞두고 멈췄지만 젊은 대원들에겐 좋은 경험 됐으리라 확신한다. 정상 공격을 이어가던 중 공격 감행이냐? 안전상 후퇴냐?를 두고 고민한 대장의 판단이 절대적이었다. 솔직히 2m가까운 눈속을 러셀(russel 눈밭을 뚫고 길 만드는 작업) 한다는 건 보통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웠고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다.

아크로폴리스산 정상 공격을 중단하고 산악훈련을 하는 대원들. 이곳에도 오사산처럼 정상 부근에 2m 가량 눈이 쌓여 접근이 불가능했다. 정병선 기자

6일차 시도한 아크로폴리스산 공격도 정상까지 눈길을 걸으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정상으로 이어진 표지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인데다 눈이 녹으면서 대원들이 계속 미끄러지는 바람에 중도 포기했다. 오지탐사대는 당초 세운 반블러프, 오사, 아크로폴리스의 3개 산 정상 등정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하는 대장의 판단에 대원들은 묵묵히 따랐다.

아크로폴리스산 정상 등정이 막히자 오지탐사대원들이 눈으로 이글루를 만들며 잠시 긴장을 풀고 즐기고 있다. 정병선 기자

김선화 대장은 하산 명령을 하며 “산에 다닐 땐 무모한 도전은 목숨을 담보한다”며 “산행은 함께 죽을 수 있는 사람과 다녀야 한다”고 했다. 대원들에게 비장한 각오를 갖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