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봐도 쩍 벌어진 어깨. 벽돌 같은 팔뚝. 어릴 때 동네에서 ‘너는 장사다’란 말을 듣던 소년이 진짜 천하장사가 됐다. 최근 21연승을 질주하며 모래판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씨름 괴물’ 김민재(21·영암군민속씨름단)가 그 주인공이다.

/영암=김영근 기자

김민재는 울산대 2학년이던 작년 6월 단오장사대회에 이어 11월엔 천하장사대회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황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씨름계에 대학생 천하장사가 등장한 건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1985년·당시 경남대 4학년) 이후 37년 만이었다.

그는 올해에도 지난 1월 설날장사씨름대회에 이어 2월 문경장사대회에서도 꽃가마를 타면서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힘이 센 남자인 그를 지난 9일 전남 영암 훈련장에서 만났다.

◇압도적인 힘과 반응 속도까지 갖춘 ‘진정한 천하장사’

씨름인들은 김민재의 등장에 쾌재를 부른다. 이만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재목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김민재(왼쪽)와 김기태 영암군민속씨름단 감독이 지난 9일 전남 영암 훈련장 인근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김 감독이 살며시 오른손을 어깨에 올리자 김민재는 쑥스러워 했다. 한라장사 출신인 김 감독은 "민재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켜봤다"면서 "그는 우리 문화유산인 씨름의 보물"이라고 했다. /김영근 기자

현역 시절 한라장사로 이름을 날린 김기태 영암군민속씨름단 감독은 “민재는 민첩성, 순발력, 힘, 경기 구사 능력 등 모든 것을 겸비했다”면서 “정상권에 있는 선수인데 아직도 정상을 바라보는 선수처럼 운동을 한다”고 흐뭇해했다.

김민재의 힘은 스스로 “누구에게도 안 밀린다”고 자부할 정도로 단연 압도적이다. 이른바 ‘3대 운동(벤치프레스, 스쿼트, 데드리프트)’ 총무게가 소형차 한 대와 비슷한 780kg에 육박한다. 백두장사급 선수들도 700kg을 넘기기 힘들고, 일반인들은 500kg도 버겁다.

김민재가 지난 9일 전남 영암 훈련장에서 단단한 팔뚝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압도적인 힘으로 이른바 '3대' 총합 780kg를 든다. 김민재는 "힘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그는 힘만 갖춘 선수가 아니다. 소리에 대한 반응 속도는 0.229초로 육상 선수에 버금가고, 제자리높이뛰기(58cm)는 배구 선수와 어깨를 견줄 만하다. 들어 올리는 힘인 배근력(276kg)은 역도 선수보다도 낫다. 도대체 그의 몸속에 몇 종목 운동선수들의 자질을 갖고 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최근 김민재의 체력 측정을 담당한 김태완 전남스포츠과학센터장은 “상대가 반응했을 때 김민재는 이미 힘을 쓰고 있을 정도로 빠르다”며 “들어 올리는 힘도 가히 기함급”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 “천하장사 5회 등극으로 씨름 전설로 남겠다”

전남 장흥 출신인 김민재는 어려서부터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힘도 바다일을 하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명덕초 3학년 때 우연히 나간 아마추어 어린이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 그는 이후 관산초로 스카우트돼 4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샅바를 잡았다.

일찍이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다. 김민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회에서 3등 두 번 한 게 전부였다. 이후 3년 동안 아무 메달도 따지 못했다”면서 “성과가 없어 슬럼프도 아니었다. 장점이 없으니 약점도 없었다. 이때 사실 그만둘 생각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중 3 때 체격이 지금 골격을 갖추면서 재능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의 앞엔 체격이 크고 기술도 뛰어난 동갑내기 최성민(태안군청)이 거대한 산처럼 버티고 있었다. 그는 고교 때 최성민을 상대로 1승4패 열세였다.

김민재는 실업팀 갈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해 프로 대신 울산대로 진학했다. 그게 성장의 기회가 됐다. 주명찬 울산대 감독의 지도 아래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정신력을 가다듬었다.

“감독님에게 정신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패배는 한순간일 뿐이다. 별것 아닌 일에 연연하지 말라. 승리하는 습관을 들여라’라는 조언을 듣고 힘을 냈어요. 예전엔 경기에 지면 울고, 3전 2선승제 승부에서 첫 판을 지면 이미 졌다고 포기하곤 했는데. 이젠 안 그래요.”

김민재가 지난 9일 전남 영암 훈련장에서 포효하는 모습. 그는 가장 마음에 드는 애칭으로 '씨름 괴물'을 꼽았다. 동명이인인 축구 국가대표 '괴물 수비수' 김민재와도 언젠가 만나고 싶다고 수줍게 말하기도 했다. /김영근 기자

김민재는 대학생 천하장사로 등극한 뒤 대학을 그만두고 올해 1월 영암군 민속씨름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난 2월 문경에서 최성민을 역전승으로 꺾고 우승하는 등 무서운 기세를 뽐낸다.

김민재는 “내 목표는 천하장사에 다섯 번 오르는 것”이라며 “씨름 하면 롤모델인 이만기 선배를 비롯한 기라성 같은 선배들 대신 김민재가 언급되도록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영암=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