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근대 5종 국가대표 전웅태. 5종목을 모두 잘해야 하는 만큼 전웅태는 매일 훈련에 몰두한다. 그는 “안되는 종목에 무작정 시간을 쏟으면 경기를 망칠 수 있다. 빠르게 잊는 것도 연습으로 단련한다”고 했다. /신현종 기자

그의 왼팔엔 약 15㎝ 길이 긴 흉터가 있다. 고교 3학년 때 말에게 밟혀 뼈가 완전히 두 동강 났고, 철심을 박는 큰 수술을 받았다. 회복에만 약 10주가 걸렸다. 그런데 그는 그 기간에 그냥 쉬지 않았다. 경기장을 찾아 다른 선수들 훈련을 보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고, 복귀 후 곧바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없었느냐”고 묻자 “트라우마요? 그런 게 생길 틈도 없이 훈련하기 바빴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어릴 때부터 운동할 때 잡념이 없는 편이어서 오롯이 훈련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근대 5종 간판이자 ‘아이돌’인 전웅태(28·광주시청)는 지난달 월드컵 2차 대회(튀르키예 앙카라)에서 남자 개인전 은메달을 차지한 후, 이어 3차 대회(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연이은 입상으로 랭킹 포인트를 쌓은 그는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조셉 충(28·영국)을 누르고 세계 1위 자리를 9개월 만에 탈환했다.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근대 5종 역사상 첫 메달(동)을 딴 그는 6월 월드컵 파이널, 8월 세계선수권, 9월 아시안게임을 겨냥하고 있다. 모두 우승이 목표다. 그리고 그 정점을 내년 7월 파리올림픽에서 찍으려 한다.

2023년 5월 17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선수가 본지와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신현종 기자

근대 5종은 펜싱, 수영, 승마 성적에 따라 육상·사격 복합 경기인 ‘레이저런’을 차등 출발해 순위를 가리는 스포츠다.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최고의 전사(戰士)를 가린다’는 취지로 고안, 그간 ‘서양 선수 전유물’이란 인식이 강했다. 실제 올림픽에서도 스웨덴이나 러시아 등 유럽 선수들 독무대였다. 그러나 ‘아시아 선수는 언감생심’이란 고정관념을 깬 선수가 전웅태다.

그의 오른팔에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5년 전 ‘멀리 나아가자’는 의미에서 바다의 영물(靈物) 고래와 나침반, 왕관을 새겼다. 운동하다 버거울 때면 늘 이 문신을 보며 단호한 의지를 다진다.

전웅태는 10살 때 수영으로 운동을 처음 시작했다. 서울체중 진학 후 학교 근대 5종 감독이 근대 5종으로 전향할 것을 권했다. 특정 종목보다 다양한 종목에 골고루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아챈 한 수였다. 선택은 옳았다. 근대 5종 불모지라는 한국에서 그는 남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주니어 시절부터 세계선수권에서 개인 은메달, 단체 금메달 등을 따내며 ‘탈아(脫亞)’급이란 찬사를 받았다 .

2023년 5월 17일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만난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 선수가 자신의 말과 포즈를 취했다./신현종 기자

그는 ‘멘털 관리’에 힘을 쏟는다. 당초 다소 처졌던 펜싱을 집중 연마하면서 5종목 기량이 고루 안정된 이후부턴 훈련 중 잘 풀리지 않는 종목은 과감히 시간을 줄인다. 5시 50분 기상해 레이저런(육상·사격 복합 경기)을 하고 아침 식사 후 펜싱을 한다. 오후엔 승마, 수영을 하고 야간엔 개인 운동 후 잠드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런 일과는 탄력적으로 변한다. 전웅태는 승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감독에게 “오늘은 수영에 더 시간을 쓰겠습니다”라고 건의한다. “한 종목에서 말려 버리면 그날은 망쳐요. 5종목이나 해야 하기에 하나에 집착하면 다른 종목도 영향을 받거든요. 대회에서도 마찬가지죠. 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빠르게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고, 그런 건 잘해요.”

일단 목전에 있는 세계선수권에서 첫 금메달을 사냥하고 아시안게임으로 그 기세를 이어간다는 각오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이어 개인전 2연패를 노리고 단체전까지 2관왕이 목표다.

그는 당차게 말한다. “저의 전성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근대 5종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이 고안한 스포츠. 전장 상황을 가정한 종목으로 ‘들판을 달리고(육상) 강을 건너(수영) 적의 말을 빼앗아 장애물을 넘으며(승마), 가까운 상대는 칼로(펜싱), 먼 거리의 적은 총으로(사격) 제압한다’는 의미다. 쿠베르탱 남작은 “근대 5종 선수는 진정한 의미의 만능 스포츠인”이라 평했다. 1912년 제5회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현재는 안전을 고려해 레이저총 사격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