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랭킹 3위 변상일(왼쪽)과 중국 5위 리쉬안하오. 두 기사는 제14회 춘란배 패권을 놓고 17일부터 결승 3번기를 펼친다. /한국기원

나란히 가시밭길을 헤쳐온 변상일(26)과 리쉬안하오(28)가 첫 세계 제패를 위해 마주 앉는다. 17일 충칭(重慶)서 시작되는 제14회 춘란배 결승 3번기가 그 무대. 세계 메이저 무관(無冠)끼리 맞붙는 결승전은 2018년 2월 22회 LG배(셰얼하오 대 이아먀) 이후 5년여 만이다.

변상일은 한국 랭킹에서 붙박이 ‘넘버 3′이다. 발군의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신진서·박정환의 벽에 막혀 정상 정복 직전 무너지곤 했다. 몇 번 우승도 해봤지만 대부분 제한기전이었다. 세계 메이저 무대에선 두 차례 4강에 그쳐왔다.

작년 말 삼성화재배 최정과의 준결승전 때는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의 뺨을 때리며 눈물을 쏟았다. 세계 정상을 향한 그의 염원이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두 사람은 23일부터 GS칼텍스배 결승 5번기를 갖는다).

리쉬안하오는 중국 랭킹 20위권 밖을 맴돌다 2022년부터 자국 2관왕에 오르는 등 성적이 돌연 급상승했다. 특히 14회 춘란배서의 활약은 눈부셨다. 8강전서 대표팀 동료 양딩신을 꺾었고 준결승서는 2연패를 노리던 신진서를 격침했다.

바둑 내용이 너무도 완벽했다. 양딩신이 리쉬안하오의 치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면서 중국 바둑계는 올해 초까지 이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양딩신이 중국기원으로부터 무고 혐의로 6개월 출전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변상일은 같은 대회 탕웨이싱과의 준결승을 대역전승으로 장식했다. 변·리 결승전은 그런 곡절을 거쳐 만들어진 카드다. 누가 이기든 승자는 한 서린 지난날을 딛고 첫 메이저 세계 제패 숙원을 이루게 된다.

통산 네 번 맞싸워 리쉬안하오가 3대1로 앞서 있다. 변상일은 2018년 10월 갑조리그 첫 대면 때 승리한 이후 내리 세 판을 내주었다. 나중 세 판은 모두 2020년 이후 대국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변상일이지만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각오를 또렷이 밝히고 있다. “상대 기보를 반복 분석 중인데 간명한 수법이 장점이고 단점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주 초부터 대표팀 최상위권 기사들과 집중 스파링 중이다.

2017년 이후 한국바둑은 박정환·신진서 두 기사에게만 집중적으로 의존해 왔다. 그 기간 세계 정상을 밟아본 ‘제3의 인물’은 신민준(21년 25회 LG배)이 유일하다. 같은 기간 10명이 넘는 메이저 우승자를 배출한 중국과 대비된다.

메이저 4강 1회(2017년 3회 몽백합배)에 그치다 처음 결승에 오른 리쉬안하오로서도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그는 올해 초 한 달간 중국 랭킹 ‘반짝 1위’에 올랐으나 5위로 떨어졌다. 아시안게임 대표 재선발전서도 탈락했다.

지난 5월 란커배에선 둘 모두 16강에 그쳤다. 이어 열린 제28회 LG배에선 변상일이 8강에 올랐고 리쉬안하오는 16강에 머물렀다. 춘란배 우승 상금은 15만달러(약 2억원). 지금까지 한국이 7회, 중국과 일본은 각각 5회 및 1회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