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에서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남자 개인전 BC3 금메달을 따낸 정호원(가운데)이 대표팀 임광택(오른쪽) 감독, 김승겸 코치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정호원(38·강원특별자치도장애인체육회)이 3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 사우스 아레나1에서 열린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남자 개인전(스포츠 등급 BC3) 결승에서 호주의 대니얼 미셸을 4엔드 합산 점수 5대2(3-0 1-0 0-2 1-0)로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호원의 우승으로 한국 보치아는 1988 서울 대회부터 이번까지 10회 연속 금메달 획득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정호원은 안경을 벗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파트너로 곁에 있던 김승겸 코치는 정호원을 꼭 껴안았다. 굳은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임광택 보치아 대표팀 감독은 속이 후련한 듯 연신 숨을 내쉬면서 크게 웃었다. 정호원이 태극기를 두르고 세리머니를 마치자 그를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김 코치와 함께 헹가래 쳤다. 헹가래 후 임 감독과 김 코치는 정호원을 안고 옆으로 뒹굴었고, 세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아이들처럼 기뻐했다.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결승 경기 중인 정호원. /로이터 연합뉴스

정호원은 생후 100일 때 바닥에 머리를 부딪힌 충격으로 뇌병변 장애를 갖게 됐다. 지하철 대성리역에서 매점을 하던 엄마 홍현주(64)씨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풍파는 계속됐다. 정호원이 여덟 살이던 해 집에 불이 났다. 정호원을 보호하기 위해 감싸안은 홍씨와 형 정상원씨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 엄마와 형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수학교에서 보치아를 처음 접한 정호원은 그때부터 엄마와 형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공을 굴리기 시작했다. 열여섯 살 때인 2002년 국가대표가 됐고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다. 처음 출전한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부터 2024 파리 패럴림픽까지 한 번도 메달을 놓쳐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 메달 7개(금4, 은2, 동1)를 따냈다.

정호원은 “어머니께서 ‘이제 마음 편하게 하고 오라’고 말씀하셨는데, 금메달을 갖고 돌아가게 돼 기쁘다”며 “큰 부담감에 시달렸는데 후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년까지는 원하는 성과가 안 나오면서 ‘이제 보치아를 좀 내려놔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옆에서 코치님이 이것저것 실험도 하고, (보치아 홈통을) 개발도 하면서 노력해줬다. 덕분에 경기력이 점점 올라왔고 올해 초부터 다시 ‘보치아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보치아는 다른 종목과 달리 장애에 맞춰 장비를 만들어 쓸 수 있다. 공도 둘레와 무게 기준만 있어, 선수 손에 맞춰 갈아내기도 하고 딱딱하게 만들기도 한다. BC3 선수들이 공을 잘 굴릴 수 있도록 돕는 보조 기구인 홈통도 최대 크기 규정만 있다. 선수가 제 기량을 펼칠 수 있게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 김 코치의 후방 지원이 선수 역량에 날개를 달아준 셈. 또 정호원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조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사격 선수용 안경까지 쓰면서 연습에 몰두했다. 이번 대회 2관왕이 목표인 정호원은 페어 종목에서 강선희(47·한전KPS)와 함께 다시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보치아는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도입됐다. 2006년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이 창립됐고 오텍그룹 등에서 보치아 선수들 후원과 지원을 꾸준히 이어오며 10회 연속 금메달을 달성할 수 있었다.

보치아는 뇌병변·중증 장애인 선수들이 참가하며 장애 등급에 따라 BC1~BC4로 나뉜다. BC3는 혼자 공을 처리할 수 없는 사지 마비 선수로, 투구를 도울 코치(보조 선수)가 필요하다. 공의 방향과 속도 등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코치와의 호흡과 협업이 중요하다. 코치는 경기 상황을 볼 수 없도록 코트를 등지고 앉는다. 선수가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코치에게 지시해 홈통 높이와 방향, 공 발사 각도 등을 조절한다. 이후 선수는 막대기를 입에 물거나 머리에 매달아 공을 밀어 굴린다.

사격에서는 금메달이 또 추가됐다. 박진호(47·강릉시청)가 이날 프랑스 샤토루 사격센터에서 열린 남자 50m 소총 3자세 SH1(척수 및 기타 장애) 결선에서 454.6점으로 패럴림픽 결선 신기록을 세우며 2위 동 차오(중국·451.8점)를 제쳤다. 지난달 31일 남자 10m 공기소총 입사 SH1에서 우승한 그는 이번 대회 한국 선수 첫 2관왕에 올랐다. 파리 패럴림픽 한국 선수단의 4번째 금메달이며, 그 중 사격에서 나온 3번째 금메달이다. 체대 출신인 박진호는 2002년 낙상 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됐다. 세계 정상급 선수로 활약해왔으나 유독 패럴림픽에선 금메달을 따지 못하다가 이번 대회에서 오랜 목표를 이뤘다.

☞보치아(Boccia)

올림픽 종목에서 유래하지 않은 독자 종목 중 하나로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됐다. ‘땅 위의 컬링’이라 불린다. 가로 6m, 세로 12.5m 경기장에서 한 팀은 적색구, 다른 팀은 청색구를 6개씩 던져 흰색 표적구에 더 가까이 붙인 공을 점수로 계산한다. 장애 등급에 따라 BC1~BC4로 나뉜다. BC3는 혼자 공을 처리할 수 없는 선수가 출전하며 투구를 도울 코치(보조 선수)가 필요하다. 선수가 코치에게 홈통 높이와 방향, 공 발사 각도 등을 알려준 다음 막대기를 입에 물거나 머리에 매달아 공을 밀어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