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KIA타이거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2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릴 예정이다. 경기전, 키움 손혁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고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0.09.29

통상 잔여연봉 보전은 구단이 감독을 경질할 때 이뤄지는 프로세스다. 노동법 위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법정 다툼까지 가기 전에 합의를 이루는 형식이다. 자진사퇴는 자신이 남은 기간의 연봉을 포기하고 쿨하게 떠나는 것이다. 구단과의 합의에 따라 위로금을 받기도 한다.

손 혁 키움 히어로즈 감독이 8일 자진사퇴했다. 지난 7일 고척 NC 다이노스전이 끝난 뒤 김치현 단장과의 면담 과정에서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구단은 이날 내부 논의 끝에 손 감독의 자진사퇴 의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석코치도 아닌 1985년생 퀄리티컨트롤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겼다.

손 감독이 밝힌 자진사퇴의 표면적 이유는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이다. 손 감독은 구단을 통해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 감독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 저를 감독으로 선임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기대한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 기대가 많았을 팬들께 죄송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손 감독의 자진사퇴에 대한 숨겨진 이유는 '미스터리'다. 키움은 최근 부진으로 2위 자리를 KT 위즈에 내주긴 했지만, 아직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다. 1위 NC 다이노스에는 9경기차로 밀려있지만, 2위 KT와는 1경기차에 불과하다. 남은 12경기에서 언제든지 반등해 뒤집을 수 있는 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손 감독이 자진사퇴를 표명하며 스스로 지휘봉을 놓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키움은 손 감독의 자진사퇴와 관련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 자진사퇴인데 잔여연봉을 보전해준다는 취지의 이야기가 나왔다. 손 감독은 지난해 11월 키움과 계약할 때 계약기간 2년, 계약금 2억원, 연봉 2억원 등 총 6억원에 사인했다. 김치현 키움 단장은 "(손 감독이) 취임하시고 나서 코로나 19나 부상 선수 속출 등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불평, 불만을 한 번도 하시지 않으셨다. 그래서 보전을 말씀 드렸다"고 말했다. "윗선의 개입으로 인한 경질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안줘도 될 돈을, 그것도 10개 구단 중 가장 재정이 열악한 구단이 잔여연봉 보전이란 선택을 했다는 건 사실상 경질이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손 감독이 경질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반 시즌도 못버티고 경질되는 사령탑들이 있었지만, 2000년대에는 1년을 못버티고 지휘봉을 놓는 감독들이 없진 않았지만 극히 적다. 헌데 올 시즌 프로 팀 사령탑에 데뷔한 감독을 1년도 안돼 자른다는 것도 비상식적이지만, 키움 구단이 손 감독의 자진사퇴 이유를 성적 부진으로 돌린 포장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

손 감독이 떠난 과정에 알맹이가 빠졌다. 구단 입장에선 극도로 예민한 부분이라 공개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키움을 제외하고 모든 야구인과 구단 관계자, 취재진은 손 감독이 떠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