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 명물 에펠탑 인근 라모트 지하철역 앞. 1m 길이 회색 철제 바리케이드가 줄지어 설치돼 있고, 프랑스 경찰들이 행인들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2일(한국 시각) 프랑스 파리 명물 에펠탑 인근 라모트 지하철역 앞. 1m 길이 회색 철제 바리케이드가 줄지어 설치돼 있고, 프랑스 경찰들이 행인들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프랑스 파리 명물인 에펠탑 근처 라모트 지하철역. 22일 역 밖으로 나와보니 경찰 4명과 1m 길이 회색 철제 바리케이드 4개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경찰들은 에펠탑으로 가는 길목에서 행인들에게 통행증 QR 코드를 요구했다. 독일에서 왔다는 로라 슐츠는 검문에 걸리자 10분 넘도록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슐츠는 “사이트에서 QR 코드를 신청하고 있다. 통과해도 트로카데로 광장은 못 들어간다고 해 속상하다”고 했다.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인다는 그 광장이다. 역에서 에펠탑으로 가는 1㎞ 사이 경찰 검문을 3번 거쳐야 했다.

에펠탑뿐이 아니다. 같은 날 개회식이 열리는 센강 양 옆 6㎞ 구간에 전부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었다. 일요일인데도 인기 명소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한산했다. 퐁뇌프 다리 근처에 있는 250년 전통 노천 서점 부키니스트(Bouquiniste)는 전부 문을 닫았다. 인근 서점 주인은 “이곳에서 10년 장사했는데, 부키니스트가 문을 닫은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자유의 나라 프랑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2024 파리 올림픽은 자유도 낭만도 만끽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18일부터 올림픽 개막식과 경기가 열리는 인근 지역 보행자 이동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거주민과 직장인과 구역 내 식당 등을 예약한 방문객만 웹사이트에서 통행증 격인 QR 코드를 받아 보여줘야 지나갈 수 있다. 관광 명소 콩코르드 광장, 그랑 팔레, 베르사유 궁전 등도 마찬가지다.

지난 20일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도 경찰이 개막식 보안 경계선에 따라 경비를 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0일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도 경찰이 개막식 보안 경계선에 따라 경비를 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이중 삼중 검문을 강행하는 이유는 파리 올림픽 운영 방식과 관련이 있다. 런던이나 리우 등 다른 올림픽 대회는 도시 외곽에 ‘올림픽 공원’을 만들고 경기장을 지었다. 1988 서울 올림픽 역시 서울 송파구로 경기장을 집중했다. 파리 올림픽은 다르다. 번화한 도심 내부에 기존 경기장들을 개보수해 사용한다. 불필요한 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취지. 덕분에 개최비는 88억달러. 직전 도쿄올림픽 4분의 1 수준으로 절감했다.

문제는 도시 전체가 ‘올림픽 공원’이 되면서 테러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프랑스 정부는 4만5000명 경찰과 1만명 군인을 파리 시내에 주둔시켜 혹시 모를 테러를 차단하려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군인들이 파리에 모였다”고 했다. 여기다 감시용 드론, 저격수를 태우는 헬리콥터 등도 준비했다.

평소 같으면 붐빌 루브르 박물관 앞도 지난 20일 한산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개막식 행사 준비로 관광객들을 통제한 영향이다. /AP 연합뉴스
평소 같으면 붐빌 루브르 박물관 앞도 지난 20일 한산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개막식 행사 준비로 관광객들을 통제한 영향이다. /AP 연합뉴스

파리 시민들은 불만이다. ‘왜 관광객들을 위해 거주민들이 희생해야 하느냐’는 역정이다. 프랑스 매체들은 이런 불편을 피해 이번 올림픽 기간 파리 시민 50% 이상이 파리를 떠나 다른 곳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교통 체증도 골치다. 파리 시내와 외곽 주요 도로에 ‘올림픽 전용 도로(voies Paris 2024)’를 놓으면서 1개 차선이 줄어들었다. 이 도로는 올림픽 조직위원회 등록 차량과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수시로 시내 도로엔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치안도 비상이다. 한 시민은 “이번 올림픽에는 경기장 밖 비공식 선수들(unofficial players)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 것”이라면서 씁쓸해했다. ‘비공식 선수’란 소매치기를 뜻한다.

사생활 보호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 국회는 지난 4월 공공장소에서 ‘지능형 CCTV’ 사용을 허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덕분에 인공지능(AI) 기술로 무기 소지 여부 등을 확인한다. 드론형 CCTV도 하늘에서 경기장 주변을 감시할 예정이다. 파리 올림픽 반대 캠페인을 벌여온 시민단체 ‘사카지’는 “올림픽 보안 실상은 가혹한 통제”라면서 “시민 희생으로 부유한 관광객들에게 제공하는 축제가 합리적인가”라고 항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