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사격 공기소총 10m 여자 결선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반효진이 자신의 소총을 번쩍 들어올리고 있다. 한국 사격 대표팀 역대 최연소 선수인 반효진은 우리나라 역대 하계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연합뉴스

만 16세 10개월. 파리 올림픽 선수단 중 가장 어린 여고생 반효진(대구체고 2학년)이 사격에서 이번 대회 4번째 금메달이자 역대 한국 하계 올림픽 100번째 금메달을 쐈다. 이틀 연속 한국 사격이 금빛 총성을 울렸다.

29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 반효진은 중국 황위팅(18)과 총점 동률을 이루는 접전을 벌인 뒤 마지막 1발로 승부를 가르는 슛오프 끝에 0.1점 차로 금메달을 땄다. 펜싱 남자 사브르 오상욱,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오예진, 여자 양궁 단체전에 이어 이번 올림픽 한국 선수단 네 번째 금메달. 만 16세 10개월 17일 나이로 이룬 역대 하계 올림픽 한국 선수 최연소 금메달이다. 종전 최연소는 1988 서울 올림픽 양궁 윤영숙(당시 만 17세 26일)이었다. 동계 올림픽에선 쇼트트랙 김윤미가 1994 릴레함메르에서 만 13세에 금메달을 딴 바 있다. 반효진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여갑순(당시 서울체고 3년), 2000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 강초현(당시 유성여고 3년)에 이어 한국 사격 ‘여고생 소총수’ 신화도 이어 갔다. 이로써 한국은 역대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100개 이상 따낸 13번째 나라가 됐다.

그래픽=양인성

반효진은 앞서 혼성 10m 공기소총에 박하준(24)과 함께 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회 직전 파트너가 바뀌었다. 금지현(24)이 대신 박하준과 짝을 이뤘고, 반효진은 최대한(20)과 출전했다. 금지현이 반효진보다 컨디션이 좋다는 판단으로 장갑석 사격 총감독이 내린 전략적 결정. 반효진이 사전 훈련 캠프에서 기복이 심했다고 한다. 박하준·금지현이 은메달을 획득한 반면, 반효진·최대한은 본선 22위(623.7점)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속상한 마음에 눈물도 흘렸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나선 개인전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반효진은 전날 열린 본선에서 올림픽 신기록(634.5점)을 세우며 전체 1위로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에서 황위팅과 동률을 이룬 총점(251.8점)도 올림픽 기록과 같다. 결선은 마지막까지 피 말리는 공방을 이어갔다. 결선은 각 선수가 10발씩 쏜 후부터 2발씩 쏠 때마다 총점이 낮은 1명씩 탈락하는 방식이다. 1발당 만점은 10.9점. 황위팅에 이어 2위를 달리던 반효진은 격차를 줄여가다 16발째 만점을 쏘며 선두로 올라섰다. 22발째에 반효진이 10.6점, 황위팅이 9.6점을 쏘면서 232.3점 대 231.0점, 점수 차가 1.3점으로 벌어졌다. 사실상 승부가 끝난 듯했다. 그런데 반효진이 마지막 두 발을 9.9점, 9.6점에 그치고 황위팅이 10.3점 10.5점을 쏘면서 동점. 마지막 한 발씩 쏘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여기서 황위팅이 10.3점을 쏘자 반효진은 집중력을 되살려 10.4점을 쏘면서 승부를 끝냈다. 반효진은 “마지막 두 발이 그렇게 크게 빗나갈 줄 몰랐다”며 “당황했지만 슛오프라고 하길래 금메달 따라고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여겼다. 그 한 발을 소중히 생각하고 쐈다”고 말했다.

반효진이 29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한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따낸 네 번째 금메달이자, 역대 올림픽에서 획득한 100번째 금메달이다. /뉴스1

반효진은 사격 입문 3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섰다. 중2 때였던 2021년 7월 사격 선수인 친구(대구체고 전보빈) 권유로 입문했다. 3년 전 도쿄 올림픽 때는 결선 경기를 훈련장에서 TV로 지켜봤다. 사격부에 들어간 지 몇 주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올림픽 무대에 나서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반효진은 “보빈이 덕분에 사격 선수가 돼서 금메달을 땄다. 너무 고맙다”고 했다. “원래 성격이 추진력이 좋고 자신감이 넘쳐서 ‘그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며 “당시 중학교 사격부 감독님이 ‘다른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왔으니 남들보다 10배 열심히 안 하면 안 받아준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더 들어가고 싶은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반효진은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입문 두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대구 지역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남들은 1~2년 걸리는 수준을 몇 달 만에 도달했다. 지난 3월 올림픽 대표 선발전 1위를 차지했고, 올림픽 직전 월드컵 대회 은메달을 따낸 데 이어 이날 ‘최고 무대’ 올림픽 주인공으로 빛났다. 대구체고 김병은 코치는 “효진이는 중학교 때부터 실력이 좋고 빠르게 성장해 눈에 띄었던 선수”라며 “그때부터 우리 학교에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와줘서 고맙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하늘이 주신 기회, 소중히 생각하고 쐈다" - 반효진이 29일 프랑스 샤토루 슈팅 센터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결선에 나서 경기하고 있다. 반효진은 이날 중국 황위팅을 슛오프 접전 끝에 0.1점 차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반효진은 "'어디까지 성장할 생각인 거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더 열심히 해서 더 성장하겠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주위 사람들은 그를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아이”라고 말한다. 어머니 이정선씨는 “밖에 나가서 버릇없다는 얘기를 들을까 걱정할 정도였다”며 “고집도 세다. 태몽도 소 꿈을 꿨다”고 했다. 이어 “효진이가 초등학생 때 성적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해서 사격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다”며 “효진이가 ‘엄마, 두고 봐. 엄마 생각이 틀렸다는 걸 내가 증명할게’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반효진에겐 특별한 버릇이 있다. 경기 당일 꼭 ‘오늘의 운세’를 찾아본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늘은 ‘모두가 나를 인정하게 될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보자마자 오늘이 나의 날이 되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시합을 앞두고는 손톱도 깎지 않는다. “시합 며칠 전에 손톱이 부러지면 좋은 성적이 나온 적이 자주 있었다”며 “일부러 자연스럽게 손톱이 부러지도록 놔둔다”고 했다. 사격복 안에 입는 얇은 스타킹도 항상 같은 걸 입는다. 과거에 대회에 나가 1등할 때 입었던 걸 구멍이 났는데도 버리지 않고 매번 입는다고 한다.

혼성 공기소총 엔트리 변경으로 속이 상했을 법했지만 반효진은 “지현 언니가 너무 잘해서 바뀐 거다. 선배들이 메달을 따내서 소름 돋을 정도로 기뻤다”고 했다. “사격을 한 지 3년밖에 안 돼서 모든 시합마다 겸손한 자세로 하나라도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오늘 금메달은 운이 좋았던 거예요. (한국에 돌아가서는) 가족들 보러 달려가야죠! 떡볶이도 먹고, 마라탕도 먹고, 치킨도 먹고, 다 먹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