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국가대표 김예지(왼쪽), 금지현이 각각 딸을 안고 있는 모습. 임신·출산은 선수 경력 단절이라는 통념을 깨고 훈련에 매진해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나란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예지·금지현 제공

한국 사격 국가대표 금지현(24), 김예지(32). 한국 리그에서도 활약한 미국 농구 선수 데리카 햄비(31). 일본 테니스 영웅 오사카 나오미(27). 파리 올림픽에 나선 이들의 공통점은 ‘엄마 선수’란 것이다. 임신·출산은 곧 선수 경력 단절로 이어진다는 통념을 깨고 ‘엄마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수년 전까지 엄마 선수들이 받는 불이익은 일상이었다. 여자 육상 선수로 역대 최다 올림픽 금메달(7개)을 획득한 미국 앨리슨 펠릭스(39)는 2019년 “작년 임신했을 때 나이키에서 후원금 삭감을 당했다”는 폭로를 했다. 당시 나이키가 여성 친화적 광고를 했던 터라 비판은 더 거셌다. 결국 나이키는 고개를 숙였다. 2년 뒤 펠릭스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동료들과 여자 1600m 계주 금메달을 합작했다.

펠릭스의 폭로 후 작은 변화들이 일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선 코로나 사태로 선수 가족 동행이 금지됐다. 하지만 젖먹이 자녀를 둔 엄마들이 대회 기간 모유 수유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잇따르자 도쿄 올림픽 조직위는 예외적으로 젖먹이 자녀 동반 입국을 허용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선 최초로 어린이집을 운영한다. 선수촌 인근 호텔에 모유 수유 공간도 마련됐다. ‘엄마 선수’가 활약할 여건·환경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회 공기소총 10m 혼성 경기에서 박하준(24)과 호흡을 맞춰 은메달을 딴 금지현은 작년 딸을 출산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직후인 2022년 10월 국제사격연맹 월드컵 5위를 차지해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작년 4월 실업연맹회장배 대회엔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나서기도 했다. 부른 배를 잡고 사로(射路)에 섰을 때는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출산 후엔 몸이 쑤셔 애를 먹었다. 하지만 그는 “출산 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제 나서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에 이번 대회 첫 메달을 안긴 후 “둘째를 낳고 다음 올림픽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금지현에 이어 여자 공기권총 10m 은메달을 딴 김예지도 2019년생 딸을 둔 ‘엄마 사수’다. 그는 “딸에게 올림픽 메달을 자랑할 수 있게 됐다”며 뿌듯해했다. 홍순철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연 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산모는 길어도 1년이 지나면 근육 상태가 임신 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간다”며 “선수로선 자녀가 생김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출산했다고 해서 특별히 다른 운동법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의미다.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청주 KB스타즈에서 2015-2016시즌을 소화한 미국 농구 선수 데리카 햄비는 이번 올림픽 미국 3X3 농구 대표팀으로 나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아이 엄마다. 2017년 딸을, 작년 아들을 낳았다. 타고난 회복력을 바탕으로 출산 후 빠르게 코트로 돌아온 걸로도 유명하다. 첫아이 출산 후엔 6주 만에, 둘째를 낳은 후엔 3주 만에 복귀했다. 그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두 번째는 더 수월했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 역시 엄마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아선 안 된다고 소리 높여 왔다. 햄비는 2022년 둘째 임신 소식을 밝혔고, 이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에서 LA 스파크스로 트레이드됐는데, 이에 대해 그는 “차별을 받은 것”이라 주장했다. WNBA(미국여자프로농구)는 조사를 거쳐 결국 에이시스 202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취소하는 징계를 내렸다. 햄비는 현재 스파크스에서 활약 중이다.

미국 축구 선수 케이시 크루거(34)는 A매치(국가 대항전) 50경기 이상을 소화한 노련한 수비수다. 이번 올림픽에선 교체 자원으로 활약 중이다. 2022년 아들을 낳은 그는 “경기나 연습이 끝난 후 아들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은 내게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올림픽을 금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마감한 프랑스 유도 대표 클라리스 아그벵누(32)는 전부터도 각종 대회장 곳곳에서 딸을 안고 다니고 모유 수유를 해 화제를 모았다.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63㎏급 금메달을 딴 후 이듬해 딸을 출산했다. 도쿄 올림픽 최종 성화 점화자이자 여자 테니스 전 세계 1위 오사카 나오미도 작년 딸을 출산한 후 기량을 되찾는 중이다. 이번 대회 1라운드에서 패배한 그는 “다시 이기는 법을 배워나가겠다”고 했다.

자메이카의 살아 있는 육상 전설로 꼽히는 셸리 앤 프레이저-프라이스(38)는 2017년 아들 지온을 출산했다. 트랙에 돌아온 그는 출산 전보다 기량이 좋아진 걸로 유명하다. 2021년엔 100m 10초60으로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종전 자신의 최고 기록보다 0.1초나 빨리 내달렸다. 이번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100m 준결승을 앞두고 부상으로 기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