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에 안긴 金… 환희는 짧았다 - 지난 5일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 경기 중인 안세영. /연합뉴스

파리 올림픽에서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딴 안세영(22·삼성생명)의 작심 발언은 큰 파장을 낳았다. 대한배드민턴협회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대표팀과 함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까지 전했다.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나섰다. 안세영도 “올림픽이 끝나고 다른 선수들이 충분히 축하받은 후 다시 입장을 알리겠다”고 밝힌 상태다.

안세영이 불만을 품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다. 미흡한 부상 관리 체계와 낡은 훈련 방식, 후원 계약과 개인 자격 국제 대회 출전 제한 조치 해제. 협회는 안세영을 충분히 특별 관리해줬다고 주장하지만 상황은 본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스타 선수가 구(舊)체제와 충돌하는 양상이다.

그래픽=김하경

① 안세영 부상 관리는 적절했나

안세영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전 때 입은 무릎 부상 정도를 협회가 오진(誤診)해 상태가 악화했고, 파리 올림픽 직전 사전 훈련 캠프에서 당한 발목 부상에 대해서도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부상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전력 노출이 될까 봐 별다른 조치 없이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는 불만이다.

협회는 이에 대해 “항저우 부상 이후 2주간 절대적 휴식과 안정을 취하고 4주간 재활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안세영 본인 의지로 11월 두 차례 국제 대회에 나섰다”고 반박했다. 올림픽 직전 부상에 대해선 안세영과 코치가 나눈 문자 내용까지 공개하며 “선수 본인이 치료를 안 받아도 된다고 했다가 다시 한의사를 한국에서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그렇게 해줬다”고 했다. 완전히 상반된 주장이라 향후 진상 조사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② 복식 선수 위주 훈련 진행했나

배드민턴은 단식과 복식 경기 방법이 다른 만큼 코치진과 훈련법도 구분해야 하는데 복식에 초점을 맞추고 단식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홀대했다는 게 안세영 지적이다. 실제 현재 김학균 총감독 체제에서 코치들이 각각 담당 종목은 있지만, 크게 구분하지 않은 채 두루두루 선수들을 지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단식보다 복식 국제 대회 성적이 좋았던 탓에 단식 선수들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개인 트레이너를 쓰고 싶다는 안세영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협회는 이에 대해 “자체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대표팀 훈련 방식 및 체력 운동 프로그램 방식을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다만 개인 트레이너와 관련해선 “선수(안세영) 의견이 공식 전달된 바가 없다”고 했다.

③ 후원 계약 자유롭게 하게 해달라

안세영은 “광고를 찍지 않아도 배드민턴만으로도 경제적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스폰서나 계약 부분을 막지 말고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드민턴협회 국가대표 운영 지침은 “국가대표 자격으로 훈련 및 대회 참가 시 협회가 지정한 경기복 및 용품을 사용해야 한다” “선수 개인 후원 계약은 우측 목 칼라에 1건으로 지정한다” “배드민턴 용품사와 협회 후원사와 동종 업종에 대한 개인 후원 계약은 제한된다”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세영은 대표팀 후원사 신발이 불편해 다른 신발을 신고 경기하겠다고 요청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스타 선수로선 불편한 규정이다.

배드민턴계에선 개인 후원 계약을 풀어주면 대표팀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현재는 단체 후원 계약으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선수와 코치들에게 보수를 지급한다. 개인 후원 계약이 자유로워져 후원사들이 스타 선수에게 몰리면, 나머지 선수들은 반대로 돈줄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다. 한 배드민턴 지도자는 “안세영도 협회 지원을 받아서 컸는데 개인 후원으로 나가버리면, 협회가 ‘제2의 안세영’을 육성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도자는 “협회가 스타 선수와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오래된 방식을 고수하며 불만을 억누르기만 한다”고 했다.

④ 대표팀 떠나 국제 대회 개인 자격 참가

안세영은 이런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태극마크를 내려놓고 개인 자격으로 향후 국제 대회에 출전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현 규정대로는 비(非)국가대표로 국제 대회를 뛸 수는 없다. 협회 규정에 국가대표로 활동한 기간이 5년이 넘고 여자는 만 27세, 남자는 만 28세 이상이어야 개인 자격으로 국제 대회에 나설 수 있게 못 박고 있다. 이를 알고 있는 안세영은 “대표팀을 나간다고 못 뛰게 하는 건 야박하다”고 했지만, 협회는 “규정이 무시되면 여러 선수가 대표팀을 이탈할 우려가 있고, 국가대표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맞서고 있다.

이는 소송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선례가 있다. 2016 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했던 고성현과 신백철이 2017년 당시 규정인 (개인 자격 참가 제한 연령) ‘남자 만 31세, 여자 만 29세’를 두고 효력 정치 가처분 신청을 내 “세계적 지명도를 얻은 선수가 국제 경기 상금 및 스폰서 계약으로 큰 수입을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문제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제한 규정 자체보다는 ‘남자 31세’가 적절한가를 따졌다. 이후 협회가 연령 제한을 낮췄는데 이번엔 어떤 해석을 내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