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 금메달리스트 반효진이 윙크를 하듯 한쪽 눈을 감고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 23일 오후 전남 나주시 전남국제사격장에서 열린 봉황기 전국사격대회가 끝난 뒤 만난 반효진은 “아직 부족하고 채울 게 많은 선수”라고 말했다. /김영근 기자

사격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의 ‘효자’ 종목이었다. 금메달 13개 중 3개가 사격에서 나왔다. 애초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여자 25m 권총 양지인(21·한국체대)뿐만 아니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10m 공기권총 오예진(19·IBK기업은행)과 10m 공기소총 반효진(17·대구체고)이 금빛 총성을 울리며 한국 사격 역사상 최고 성적(금 3·은 3)을 올렸다.

그중 반효진은 한국 역대 하계 올림픽 최연소(만 16세 10개월) 금메달리스트가 돼 특히 화제를 모았다. 한국의 통산 100번째 금메달 주인공이기도 했다. ‘깜짝 스타’로 떠오른 반효진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방송 출연 등 각종 일정을 소화하는 동시에 본업인 대회 출전을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3일 전남 나주에서 열린 봉황기 전국사격대회에서 만난 그는 “내가 운동선수인지 뭔지 헷갈릴 정도로 바빠서 힘들다. 학교 수업도 듣고 훈련과 시합을 하면서 여러 스케줄을 다니고 있다”며 “그래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생기는 일들이라 감사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반효진은 올림픽 전엔 ‘잘하면 메달권’ 정도로 평가받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금메달도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아직 어리고 부족해서 이번엔 경험 삼아 나가자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대신 태극기 달고 나가는 만큼 책임감 있게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황위팅과 마지막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슛오프 접전을 벌여 0.1점 차로 금메달을 땄다. 중2 때 사격에 입문해 3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 배경엔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1시간 반씩 소총에 무거운 추를 올려놓고 자세 훈련을 했어요. 그러다가 실제 사격을 시작했는데 시사(試射) 때 두 발 연속으로 잘못 쏘면 코치님이 바로 총을 못 쏘게 하고 다시 자세 훈련을 주야장천 시키셨어요.”

반효진은 급속 성장 비결로 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꼽았다. 사격장에 입장할 때 들리는 안내 방송부터 준비 시간, 시사, 마지막 격발까지 머릿속으로 한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뛰어보는 것. 그는 “남들보다 1년 늦게 사격을 시작해서 빨리 루틴을 만들고 싶었다. 총을 안 들고 있는 시간에도 총을 쐈다”고 말했다.

사격을 시작하고 매 순간이 즐거웠다는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작년 10월 전국체전에서 크게 부진하며 여고부 5위에 머물렀다. 반효진은 “주말도 포기하고 사격장에서 살다시피 운동만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다”며 “번아웃이라고 할까, 사격장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총만 잡으면 울었다”고 했다.

“체전 끝나고 다들 쉬는 시기에도 전 텅 빈 사격장에서 반만 불을 켜놓고 코치님과 계속 훈련을 했어요. 속으로 ‘나는 뭐 안 쉬고 싶나’ 하면서 ‘현타(현실에 느끼는 회의감을 이르는 신조어)’가 오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시합이 있어서 방황할 시간도 없이 운동하다 보니 자연스레 괜찮아졌어요.”

올림픽 후 학교에서 재회한 친구들 얘기를 할 땐 활기가 돌았다. 학교 기숙사에 돌아가자 친구들이 그동안 함께 찍었던 사진을 인화해 벽에 붙여 놓고 풍선을 띄워 ‘깜짝’ 축하 파티를 해줬다고 한다. 그는 “친구들에게 한턱 쐈다. 먹고 싶어 하는 떡볶이, 치킨, 마라탕을 잔뜩 사줬다”며 “정작 나만 치킨을 아직 한 번도 못 먹었다”면서 웃었다.

반효진은 이날 대회에서 여고부 2위를 차지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선 아쉬운 성적. 하지만 그는 “올림픽 이후에 2주 넘게 제대로 훈련도 못 했다. 2등도 너무 잘 나온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에 없던 압박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여갑순·강초현(여고생 올림픽 메달리스트) 선배님들에 이어 여고생 국가대표가 나왔다고 주목을 받았을 때, 주변에서 부담 느낄까봐 걱정해줄 때도 괜찮았어요. 선발전 1등을 해서 화제가 되는 게 당연한 거지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달라요. 올림픽 끝나고 지난주 처음으로 춘천시장배(여고부 3위)에 나갔는데 엄청 부담되더라고요. ‘1등은 당연히 반효진이겠지’라는 시선이 느껴져요. 아직 부족하고 채울 게 많은 선수인데 말이죠.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요.”

반효진은 앞으로 목표를 “완전한 실력으로 다시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스스로 이번 올림픽 금메달엔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봤다. 경기 막판 10.9점 만점에 9.9점, 9.6점을 연달아 쏘는 큰 실수를 했는데도 바로 탈락하지 않고 마지막 슛오프로 향한 게 ‘하늘이 준 기회’였다고 했다. 그는 “다음 올림픽 땐 완벽한 모습으로 제대로 다시 금메달 따겠다”고 했다.

“금메달 한 번으로 반짝하고 나중에 ‘누구였더라’ 하며 잊히는 선수가 되기 싫어요. 앞으로 다가올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또 다음 올림픽까지 제 이름과 공기소총이라는 종목이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면 해요. 나갈 수 있는 시합 최대한 나가고, 이룰 수 있는 성적 다 이루면서 직진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