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대한항공 임동혁(맨 오른쪽)이 5일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스파이크를 하고 있다. /허상욱 스포츠조선 기자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 공격수 임동혁(25)은 귀한 존재다. 그는 배구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국내 ‘토종’ 아포짓 스파이커. 과거엔 라이트 공격수로 불렸던 이 자리는 쉴 새 없이 코트 오른쪽에서 스파이크를 때리며 공격을 이끌고, 높이 뛰어올라 블로킹도 잘해야 하는 포지션이다. 국내 선수들이 이 자리에 기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키가 상대적으로 크고 힘과 체력이 좋은 외국인 선수에게 돌아간다.

주변 설득이나 만류에도 임동혁은 데뷔 이후 아포짓을 고수했다. 충북 제천산업고 에이스로 군림하고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만 16세)로 뽑히는 등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았다는 자존심도 있었다. 고교 졸업반 당시인 2017-2018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대한항공의 부름을 받은 그는 “고교 1학년 때부터 아포짓을 맡았다. 다른 포지션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프로 무대에 입성한 후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4년 차였던 2020-2021시즌엔 한 시즌 개인 최다인 506득점을 꽂아 넣으며 본격적인 등장을 알렸다. “외국인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을 한다 해도 제가 이겨내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포기하지 않은 것 같네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당당한 체격(201㎝·91㎏)을 가진 임동혁은 올 시즌 기량이 만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국인 선수 링컨 윌리엄스(31·호주·200㎝)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진 사이 주전으로 출격하며 팀 공격 선봉에 섰다. 리그 반환점을 돈 15일 현재 공격 성공률 1위(57.22%), 득점 7위(357점) 등을 달린다. 득점 부문에선 국내 선수 가운데 1위다. 한 시즌 개인 최다 득점 기록 경신도 넘본다. 구단 관계자는 “임동혁은 외국인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력적인 거포”라고 말했다.

프로배구 남자부 대한항공의 임동혁이 5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시즌 V리그 4라운드 홈 경기에서 우리카드를 상대로 득점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임동혁은 “이제 (배구에서) 키만 커도 되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며 본인 장점으론 “큰 신장에 비해 스피드와 점프가 좋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서전트(제자리) 점프 높이는 65㎝로 보통 60~70㎝인 외국인 선수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하다”며 “개인 기록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기록이 좋으면 팀도 더욱 높은 곳에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현재 리그 2위(승점 40·13승 10패). 1위 우리카드(승점 43·15승 8패)와 승점 차가 3에 불과하다. 지난 3시즌 연속 정규 리그 1위를 기록한 것에 비교하면 다소 기세가 처지지만 서서히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임동혁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데뷔 이후 처음 자유 계약 선수(FA) 자격을 얻었다. 곳곳에서 ‘러브 콜’이 쇄도했지만 대한항공에 남기로 결정했다. 3년 최대 15억원에 계약했다. 대한항공은 올 시즌 전무후무한 통합 우승(정규 리그 1위·챔피언 결정전 우승) 4연패(連霸)를 향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을 마치고 군입대를 하는 임동혁은 “팀 목표는 모든 분이 다 아실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다치지 않고 경기에 계속 출전하고, 무조건 통합 우승 4연패를 달성해 V리그에 새 역사를 남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