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하경

그동안 많은 한국 야구 스타들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릴 때마다 의문부호가 붙었다. 과연 통할까. 박찬호·류현진이나 추신수·김하성처럼 재능을 발휘한 선수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높은 수준의 벽에 부딪혀 기대에 못 미쳤다. 이제 관심은 KBO리그 출신으로는 사상 첫 1억달러대 계약을 맺은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200안타도 가능하다

메이저리그 통계 전문 사이트인 팬그래프닷컴은 이정후가 2024시즌 162경기 중 13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91(160안타), 12홈런 83득점 57타점, 출루율 0.354 정도 성적을 낼 것으로 예측한다. 국내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2022년 성적표(타율 0.349 23홈런 113타점 85득점, 출루율 0.421)과 비교하면 미흡하지만 이 기록을 2023년 내셔널리그에 적용하면 타율은 7위, 득점은 21위, 출루율 22위로 상위권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국내외 야구 전문가들 평가는 더 후하다. MLB닷컴 마이클 클레어 기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팀내 최고 스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4년 동안 363경기 율 0.240 220안타 40홈런 120타점 성적을 냈던 최희섭 KIA 타격코치는 “빨리 적응하면 첫해 200안타 이상도 가능하다”고 낙관론을 폈다. 스포츠 전문 매체 ESPN 버스터 올니 기자는 “자이언츠가 과잉 투자했다는 사람이 많지만, 그만큼 재능을 갖췄다”고 했다.

◇”눈과 손, 충분히 통한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파르한 자이디 사장은 “상대 투수 구종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특별하다”고 지적했다. 한 번도 메이저리그 그라운드를 밟지 않은 이정후에게 1억달러를 투자한 건 눈(선구안)을 높게 샀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좀처럼 삼진을 당하지 않는다. 최대한 스윙을 아끼며,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공이 날아와도 타고난 반응 능력으로 대응하는 진기 명기도 많이 연출했다. ESPN은 “최근 두 시즌 동안 이정후 삼진 비율은 5.4%로 2023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평균 22.7%보다 현저히 낮다”고 강조했다. 지난 시즌 한국은 18.9%였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한국에서만큼 극도로 삼진 비율을 적게 가져가긴 어렵다고 봤다. ESPN은 이정후가 2023년 한국에서보다 볼넷은 줄고(12.7%→8.2%), 삼진은 늘어날 것(5.9%→9.1%)으로 예상했다. 이것도 대단한 수치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삼진 비율이 10% 이하를 남긴 선수는 리그 전체 타율 1위(0.354)인 루이스 아라에즈(27·마이애미 말린스) 5.5%뿐이다.

최 코치는 간결한 타격 자세를 높게 평가했다. “준비 자세가 어떤 투수 공에도 대응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빨라 메이저리그 투수들 빠른 공을 금세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해설가로도 활동했던 차명석 LG트윈스 단장은 “방망이 중심에 갖다 맞히는 능력이 뛰어나 타구 스피드가 느려도 좋은 타구를 잘 만들어낸다”며 “폭넓은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은 메이저에서도 중상위권 이상”이라고 했다.

클레어 기자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기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대만큼 해주면 자이언츠의 수퍼스타가 될 수 있다”며 “리그를 옮기면 항상 잘 적응할지 우려가 따르게 마련이지만, 자질이 전체적으로 뛰어나 충분히 진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자만은 금물...체력이 관건

최 코치는 “미국은 새벽 일찍부터 선수들이 운동한다. 나도 오전 5시에 일어났다”면서 “팀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문화를 잘 파악해 빨리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에선 스프링캠프 시범경기를 포함해 200경기를 넘게 소화한다. 체력적으로 뒤처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에서 9년간 54승 60패 86세이브 평균자책점 4.42를 기록한 김병현은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은 필요할 것”이라면서 “현역 시절 오러클파크(당시 AT&T파크)에서 많이 맞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타석에서 마운드가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여 타자들이 고전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정후는 큰 규모 계약을 맺은 만큼 출전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이 유리하다. 김병현은 “많이 투자한 선수들에게 (구단은) 많은 기회를 준다”면서 “나처럼 부상을 당했을 때 기회를 잃을 수 있다는 조급함 때문에 무리하다가 더 안 좋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차 단장은 “자히디 사장이 그냥 헛돈 쓸 사람은 아니다”라면서 “이정후가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구단에서 전폭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