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가 1일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22) 결승에서 독일을 꺾고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66 월드컵에서 남자팀이 정상에 오른 이후 56년 만에 메이저 국제대회 타이틀을 차지하며 축구 종주국의 자존심을 세웠다. 잉글랜드 팬들은 “축구가 집으로 온다(Football’s coming Home)”라는 가사로 유명한 응원가를 부르며 열광했다. /로이터 뉴스1

라이오네스(암사자)들과 함께 축구가 집으로 왔다.

잉글랜드가 2022 여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여자 유로)에서 사상 처음 우승했다. 남자 대표팀이 1966년 자국에서 열린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 정상에 오른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메이저 국제 대회 트로피를 차지하며 종가(宗家)의 자존심을 세웠다.

잉글랜드 여자팀은 1일 열린 결승전에서 독일을 2대1로 꺾어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1-1로 맞서던 연장 후반 5분 클로이 켈리(24·맨체스터 시티)가 결승골을 넣었다. 오른쪽 코너킥 후 문전 혼전 중 독일 골키퍼가 걷어 내려던 공이 자신에게 흘러오자 밀어 넣었다. 지난 6월 벨기에와 벌인 평가전에서 A매치(국가대항전) 데뷔 골을 넣은 켈리는 삼사자(Three Lions)가 그려진 잉글랜드 유니폼을 입고 16번째로 나선 이날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봤다. 잉글랜드의 베스 미드(27·아스널)는 6골(5어시스트)을 올려 득점상인 골든부트와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13년 만의 리턴매치서 독일 눌러

잉글랜드는 앞서 준우승을 두 번 했다. 1984년 1회 대회 결승에서 스웨덴에 승부차기 끝에 졌고, 2009년 10회 대회 결승 땐 독일에 2대6으로 패배했다.

잉글랜드가 개최권을 딴 이번 13회 대회는 당초 작년에 열릴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사태로 1년 미뤄졌다. 16팀이 4조로 나뉘어 진행한 조별 리그에서 A조의 잉글랜드는 3전 전승(14득점 무실점)했고, 8강전(스페인·2대1)과 4강전(스웨덴·4대0)도 이겼다. 결승 상대인 독일은 서독 시절을 포함해 역대 최다인 8회 우승국. 잉글랜드는 9년 만의 왕좌 탈환을 벼른 독일을 극적으로 물리치고 환호했다. 연장전에서 득점한 켈리는 유니폼 상의를 벗어 들고 그라운드를 달리며 동료 선수들과 감격을 나눴다. 잉글랜드 선수들은 시상식 후에도 사리나 비흐만(53·네덜란드) 감독이 우승 기자회견을 하는 인터뷰실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축구가 집으로 온다(Football’s coming Home)”는 가사로 유명한 응원가 ‘삼사자’를 부르고, 신나게 춤까지 췄다.

네덜란드를 2017년 대회 우승으로 이끈 비흐만 감독은 사령탑으로 2연패(連覇)를 일궜다. 비흐만 감독은 “잉글랜드가 우리 뒤에 있다는 걸 믿고 있었다. 팬들에게 엄청난 응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웸블리 구장을 메운 8만7192명

여자 유로 2022는 지난 수년 사이 유럽에서 높아진 여자 축구의 인기를 입증한 무대였다. 개최국 잉글랜드 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티켓 판매로 이어졌다. 예매(50만장)와 현장 발매로 70만장 이상이 팔려 2017 네덜란드 대회 때의 관중 기록(24만명)을 훌쩍 뛰어넘었다. 잉글랜드와 오스트리아의 개막전이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구장 올드 트래퍼드에 6만8871명이 입장했고,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엔 8만7192명이 들어차 역대 남녀 유로를 통틀어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장인 윌리엄 왕세손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현장을 찾았다.

일반석 기준으로 결승전 입장권 최고 가격은 50파운드(약 7만9000원)였는데, 일찌감치 매진됐다. 입장권 재판매 사이트에서 일반 티켓이 수십만 원대에 거래되기도 했다.

웸블리는 작년 7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남자 유로 결승전이 열린 장소이기도 했다. 코로나 여파로 입장 관중은 6만7000여 명에 그쳤고, 잉글랜드는 이탈리아와 연장까지 1대1로 비긴 끝에 승부차기에서 졌다. 그때 실망했던 팬들은 1년 만에 여자팀의 승리로 열광했다.

잉글랜드는 남자 축구에서 자국에서 열린 1966년 대회 이후 메이저 국제 대회 우승이 없다. 여자팀의 우승 소식을 접한 토트넘의 해리 케인은 “비현실적인 장면들이다. 놀라운 우승을 일궈낸 것에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팀·선수 후원과 광고 쏟아질 듯

현지에선 나이키, 아디다스, 펩시 등 글로벌 기업이 잉글랜드 여자 대표팀과 수십억 원대 후원 계약을 맺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알레시아 루소(23·맨유) 등 스타 선수들에겐 식음료·자동차·게임 브랜드 등의 광고 계약 제안도 밀려들 전망이다.

잉글랜드는 대회 총상금 1600만유로(약 213억원) 중 우승 상금 66만유로(약 8억8000만원)와 단계별 승리 상금을 포함해 총 208만5000유로(약 28억원)를 받는다. 작년 남자 유로 우승팀 이탈리아가 거둬들인 총상금은 3400만유로(약 453억원)였다. 여자 축구가 아직 남자 축구보다 시장 가치가 떨어지지만, 세계 스포츠계에 ‘비즈니스 모델’로 성장해 나갈 잠재력은 충분하다는 점을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