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셰필드에 승리를 거둔 뒤 토트넘 홈팬들에게 인사를 하러 간 주장 손흥민(오른쪽)이 이날 1골 1도움을 올린 히샤를리송을 가리키며 관중 호응을 유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6일 토트넘과 셰필드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5라운드 홈경기. 후반 들어간 히샤를리송(26·브라질)이 1골 1도움으로 맹활약하면서 토트넘은 짜릿한 2대1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자 벤치에 있던 주장 손흥민(31)은 그에게 달려가 뜨겁게 포옹했다. 그러곤 ‘동생 기 살려주기’에 본격 나섰다. 선수단이 팬들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전할 때, 손흥민은 히샤를리송 등을 떠밀었다. 대열 앞에 서서 승리의 주역으로 팬들과 적극 교감하길 독려한 셈이다. 멋쩍어하던 히샤를리송도 이내 손을 쳐들고 관중과 즐겁게 감흥을 나눴다. 토트넘은 소셜미디어에 이 영상을 올리며 ‘변함없는 한 가족’이라고 적었다.

토트넘의 초반 기세가 매섭다. 4승 1무로 맨체스터 시티(5승)에 이어 2위. 토트넘은 이번 2023-2024시즌 전 주포이자 부주장이었던 해리 케인(30)이 떠나며 전망이 어두웠다. 하지만 토트넘은 짜임새 있는 공격 축구를 펼치고 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엔제 포스테코글루(58·호주) 토트넘 감독은 적절한 선발·교체로 용병술 호평을 받는다. “수비에 치중했던 지난 시즌에 비해 토트넘 축구를 보는 재미가 더 커졌다” “토트넘이 한층 더 유기적으로 변했다”는 평이 잇따른다. 강화된 조직력에 ‘주장 손흥민’의 리더십도 각국에서 조명한다. 손흥민은 앞서도 동료들과 깊은 교감을 나누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젠 그가 주장으로 모두와 두루 친하게 지내며 선수를 파악하고, 특히 어린 선수들이 자신감을 쌓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손흥민이 이날 히샤를리송을 주인공으로 만든 모습은 큰 화제가 됐다. 히샤를리송은 작년 6000만파운드(약 986억원)의 높은 이적료로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지난 시즌 리그 27경기 1골로 부진, ‘최악의 영입’이라는 오명을 썼다. 올 시즌에도 4라운드까지 골 맛을 보지 못해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경기장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는 “내 돈만 바라보던 이들이 있었다”며 경기 외적으로도 마음고생을 했음을 드러냈다.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히샤를리송은 최근 에이전트와 결별해, 그가 에이전트와 금전적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히샤를리송은 브라질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마약이 득실거리는 골목에서 아이스크림을 팔며 생계에 보탰다.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채 오롯이 축구 재능으로 가정을 일으킨 그에게 경제적 갈등은 심적으로 크게 다가왔을 터다. 그는 “심리 치료를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셰필드에 0-1로 뒤지던 후반 추가 시간 8분 동점골을 넣고, 2분 뒤 데얀 쿨루세브스키(23·스웨덴)의 결승골을 도와 승리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손흥민. 손흥민은 “어떻게 그를 도울지 그간 계속 생각했다. 내가 골을 넣은 것보다 더 기쁘다”고 말했다. 미 매체 ESPN은 “손흥민은 진정한 주장이자 리더”라고 추켜세웠고, 유럽 축구 전문가 파브리치오 로마노(30)는 “주장이 보여준 정신력, 그저 존경한다”고 했다.

손흥민은 선수들과 두터운 관계를 유지한다. 동료 제임스 매디슨(27·잉글랜드)은 “손흥민은 몇 시간을 함께 이야기 나눌 정도로 따뜻하고 좋은 선수. 리더 역할을 너무 잘하고 있다”고 했다. 손흥민의 소셜미디어 글에 매디슨, 페드로 포로(24·스페인), 미키 판더벤(22·네덜란드) 등 동료들이 ‘우리 주장’ 같은 댓글을 남기곤 한다. 이처럼 베테랑 손흥민이 어린 선수들과 온라인에서 교감하는 건 팬들에게도 기쁨이다.

손흥민이 동료들과 함께 히샤를리송 골을 기뻐해주고 있다. /AFP 연합뉴스

최근 호성적,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손흥민, 매디슨, 크리스티안 로메로(25·아르헨티나)를 주장단으로 임명한 건 적절했다는 평이 나온다. 2015년부터 붙박이 주장이었던 위고 요리스(37·프랑스), 지난 시즌까지 주장단에 속했던 에릭 다이어(29·잉글랜드)는 올 시즌 입지를 잃었다. 이런 가운데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을 하는 데 능한 손흥민이 주장 완장을 찬 건 토트넘에게도 의미가 크다. 2002년생 어린 선수 파페 사르(세네갈)는 지난 시즌 11경기 213분 출전에 그쳤는데, 올 시즌엔 벌써 5경기 299분을 소화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사르는 “손흥민은 날 이해해주려 하는 멋진 사람. 내게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줬다”고 말한 바 있다. 손흥민이 마냥 유한 건 아니다. 동료가 기회를 허무하게 놓치면 왜 자신이나 다른 선수에게 공을 주지 않았느냐고 화내기도 한다. 하지만 동료가 골을 넣으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이도 손흥민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손흥민은 훌륭한 리더십을 갖췄다.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선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