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가 3월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이달 독회의 추천작은 2권. ‘두고 온 것’(강영숙),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임솔아)’입니다. 심사평 전문은 chosun.com에 싣습니다.

강영숙의 소설집 ‘두고 온 것’에는 재난에 관한 묘사가 압도적이다. 몰아닥치는 재난이 아니라 도사리고 있는 재난이다. 이전에도 있고 현재에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이를테면 지진, 황사, 역병, 온난화, 전쟁, 기타 등등. 모든 재난은 불가항력적으로 보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불가항력적인 것은 소설 속의 화자들, 그들 내부의 붕괴로 보인다. 서서히 무너지다가 마침내 재난이 되어버린 순간에 이른 사람들. 그러니까 당신과 나. 우리들.

/정멜멜

연인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등을 돌리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다하지 않을 수 없었던 회사에서는 사직을 요구하고, 가정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는 늙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설 속 이런 문장은 서늘하다. “엄청난 역병이 몰아닥친 지역치고는 모든 것이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그토록 무서운 일들이 벌어져도, 또 벌어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그저 고요하기만 한데, ‘야 거기 들어가면 안 돼. 물러서. 큰일 난다’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곳에 기어코 들어가 거기를 낱낱이 들여다 봐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결코 눈감지 않는 사람이다.

소설집의 첫 번째 소설에서 제목으로 쓰인 ‘어른의 맛’은 마카오의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이 먹는 아몬드 쿠키의 맛이란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아 그렇게 부른다는. 소설집 전체에서 보이는바 붕괴되고 침몰하고 스스로 침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강영숙의 시선은 차갑다. 문장도 냉정하다. 어른의 맛을 기어코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선과 문장 너머에 있는 것은 간절한 위로에 대한 희구가 아닐까.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해야했던 연애처럼. 어렸을 때의 한때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친구의 뺨에 자신의 뺨을 붙였다 떼는 것처럼. 그리고 이런 문장처럼.

“혹시 지진이 나서 집이 무너지면 어쩌지. 그러면 꼭 날 찾으러 와.”

☞ 강영숙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8월의 식사’로 데뷔. 한국일보문학상(2006), 백신애문학상(2011) 이효석 문학상(2017)을 받은 등단 25년 차 작가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정과리·구효서·이승우·김인숙·김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