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투자를 조언해주는 로보 어드바이저 기업 콴텍의 이상근 대표는 시계 만들기가 취미다. 그는 “시계를 조립하는 일이 투자 공식을 짜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한다. 이 대표가 사무실에서 시계를 손질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두고 시계를 하나 둘 모으기 시작했다. 손목 위 작은 기계장치의 작동 메커니즘에 관심이 생겼다.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시계가 상품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쌓아가는 방식에도 흥미를 느꼈다.

어느날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하려고 했더니 너무 비쌌다. “내가 직접 고쳐보자”고 마음먹었다. 내친김에 내 손으로 시계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스위스에 무브먼트(핵심 작동 장치)를 주문하고 온라인몰에서 필요한 부품들을 사모았다. 나만의 시계를 만든다는 흥분이 솟구쳤다. 시계 케이스를 내 취향대로 고를 수 있어 좋았다.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방법은 영어로 된 외국의 시계 조립 정보 공유 사이트를 참조해 독학했다.

시계 하나를 제작하는 데 족히 두 달은 걸린다. 업무 시간 외에 틈틈이 하니까 그렇다. 같은 부품도 어떻게 깎고 조립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까지 직접 만든 시계가 10개다. 부모님께 드리니 좋아하셨다. 친구와 지인에게도 선물로 건넸다. 손때 묻은 시계를 선물받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내 본업인 투자 알고리즘을 만드는 작업도 시계 조립과 비슷하다. 알고리즘이란 간단히 말해 원칙을 세워 놓고 데이터를 집약시키는 것이다. 세밀한 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시계 만들기와 공통 분모가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험과 인사이트를 버무려 투자 알고리즘을 짠다. 정교할수록 수익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좋은 시계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하다. 시계를 조립하는 노하우에 따라 시계의 고급스러움이 좌우되듯 투자 알고리즘도 마찬가지다.

로보 어드바이저 업계에서 가장 많은 3조5000억원을 알고리즘에 의해 운용하는 건 시계가 째깍거리는 것처럼 세밀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투자 알고리즘이 AI(인공지능)로 굴러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오해다. 좋은 시계는 주기적으로 매만져줘야 하는 것처럼 투자 알고리즘도 때맞춰 변화를 줘야 한다.

알고리즘의 기본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시장 변화를 감안해 데이터를 수정한다. 국내외 각종 경제지표와 주가 흐름, 그리고 투자 기업을 둘러싼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결국 시계나 알고리즘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역량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싶다. 애정을 가지고 만져야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로보 어드바이저 기업을 이끌고 값이 나가는 시계를 여럿 모았기 때문에 현재의 내 모습만 보면 화려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20대 초반에 대학 등록금을 대기도 빠듯할 만큼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이 자리까지 왔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택배 물류센터에서 짐을 실어나르기도 했다. 공사장 막일도 해봤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종종 투자 알고리즘 짜는 걸 대학에서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렇지 않다. 시계 조립을 독학했듯 알고리즘도 따로 공부했다. 인생에서 스스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것만 해도 적지 않은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