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차기 총재 지명자가 지난 2월 24일 중의원 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지난달 10일 오후 4시를 조금 넘어선 시각 도쿄 금융시장이 돌연 혼란에 빠졌다.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0.5% 급락했다. 국채 금리는 순식간에 뛰었다. 일본 정부가 오는 4월 임기를 마치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72) 전 도쿄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명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시장이 놀랐기 때문이다.

원래 차기 총재는 비둘기파이자 아베노믹스를 계승하는 인물로 각인된 아마미야 마사요시 부총재가 유력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우에다가 깜짝 발탁되자 초저금리 정책이 수정될 것으로 예상돼 엔화 가치가 순식간에 오른 것이다. 그러다 우에다 내정자가 “완화적인 통화정책은 계속 필요하다”고 말하고, 그가 매파적인 인물은 아니라는 해설이 나오자 환율·금리가 금세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날 소동은 장기간 유지된 초저금리 속에 막대한 국가 부채를 안고 있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픽=김의균

◇우에다 지명은 고민의 산물

우에다 내정자는 도쿄대에서 경제학·수학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시절 지도 교수가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 부의장과 이스라엘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다.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는 동문수학한 사이다. 그래서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우에다는 일본의 버냉키”라며 “온화하지만 결단력도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피셔 문하에서 나온 우에다 내정자는 캐나다 브리시티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귀국 후 오사카대·도쿄대에서 가르쳤다. 통화정책을 다루기도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과 동격인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을 1998년부터 7년간 지냈다.

우에다 내정자는 초저금리에서 벗어나 금리를 올리는 방향으로의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에 대해 ‘필요하지만 서두르지는 않아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에다 기용이 예상 밖이긴 해도 합리적인 결정이라는 해설이 나왔다. 아베노믹스 기조를 이어가길 원하는 집권 자민당 주류와 일본은행의 피벗을 예상하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완만한 출구 전략을 모색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JP모건체이스는 “우에다 지명은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점진적인 통화정책 정상화를 진행하기 위해 균형 잡힌 선택”이라고 했다.

◇YCC 언제 폐기하나

관심은 우에다 내정자가 언제 YCC(Yield Curve Control·수익률 통제 곡선) 정책을 폐기 또는 수정하느냐에 모아진다. YCC란 장기 국채 수익률 변동폭을 미리 정해놓고 이를 넘어서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량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해 국채 수익률을 낮게 유지하는 정책을 말한다.

일본은행은 2016년 1월부터 연 0.25% 상한으로 YCC를 시행하다가 작년 12월부터 0.5%로 높여 유지하고 있다. YCC를 가동하면 시중에 돈을 대거 풀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단기 금리를 -0.1%로 유지하는 마이너스 금리와 더불어 만성적인 저물가 치료법으로 꼽혔다.

문제는 YCC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는 전문가와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1026조엔(약 9930조원)에 달하는 전체 일본 국채 발행량의 50.2%나 일본은행이 갖고 있다. 중앙은행 보유량이 너무 많아 국채 유동성이 떨어지고 시장 금리 왜곡도 지나치다. 게다가 글로벌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일본 내 물가가 급등하고 있어 YCC를 유지할 명분도 사라지고 있다. 지난 1월 일본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4.2% 올랐다. 1982년 9월 이후 41년 만에 최고치다.

YCC를 포기해야 엔화 가치가 올라 수입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도 비등하다. 일본의 올해 1월 무역수지 적자는 3조4966억엔으로, 비교 가능한 통계가 있는 1979년 이후 월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엔화 가치가 낮다 보니 원자재 수입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게 주된 원인이다. 우에다 내정자는 지난달 24일 중의원 청문회에서 “금융 완화를 계속해 경제를 확실히 지지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YCC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며 논의를 거듭해 바람직한 모습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구로다 하루히코(왼쪽) 일본은행 총재와 나란히 앉아 있는 우에다 가즈오 차기 일본은행 총재 지명자./로이터 뉴스1

어차피 우에다 내정자가 초저금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있다면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미 시장에 혼란이 생기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월 해외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순매도한 규모(4조1190억엔)는 월간으로 역대 최대였다. 작년 12월 YCC 상한선을 연 0.25%에서 0.5%로 올려 국채 금리가 오른 데다, 우에다 내정자가 향후 금리를 더 올릴 것으로 보고 국채값 하락을 우려해 서둘러 매도에 나선 것이다. 이지평 한국외국어대 특임교수는 “우에다가 10년 만기 국채 금리를 0.8~1% 정도로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그 정도는 일본 경제가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이와 반대로 금리 인상 전환이 경기 둔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아베노믹스 신봉자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다. 이와타 기쿠오 전 일본은행 부총재는 NHK에 나와 “조기에 통화정책을 전환하면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에 다시 빠질 수 있다”며 “YCC를 폐기하면 엔고의 압박으로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에다 내정자가 YCC에서 탈피하면 그 영향이 일본에 국한되지 않을 전망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YCC가 폐기되면 글로벌 국채 수익률이 오르고 위험자산(주식) 선호도가 낮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 규모 3위 독일에 내줄 수도

새 수장을 맞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기조로 돌아설 경우 1026조엔에 달하는 막대한 국채 발행량에 따른 이자 부담이 부쩍 커지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 채무는 263.9%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회원국 가운데 단연 가장 높다.

금리 인상이 성장을 둔화시키면 일본 경제의 4위 추락을 앞당길 수도 있다. 요즘 일본에서는 경제 규모 세계 3위 자리를 독일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크다. GDP로 일본은 1968년 서독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섰다가 2010년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뒤 3위를 간신히 지키고 있다. 지난 2000년에는 일본의 GDP가 독일보다 3조195억달러나 더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그 차이가 2694억달러까지 좁혀졌다. 1인당 GDP로는 이미 2013년 독일에 추월을 허용한 이후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수요 부족과 구인난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의 만성적인 문제도 우에다 내정자 앞에 놓여 있다. 혁신 기업이 등장하지 않는 데다 투자보다는 저축에 쏠리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간 ‘유동성 함정’(돈을 풀어도 소비·투자가 늘어나지 않는 현상)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앙은행이 경제 부진을 해결할 것이라는 믿음이 크게 약해져 있다”며 “우에다가 망토를 두른 영웅적인 구원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YCC (Yield Curve Control)

장기 국채 금리의 목표치를 정해 놓고 이를 넘어설 경우 중앙은행이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해 금리가 높아지지 않도록 통제하는 정책. 일본은행은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 0.5%를 넘지 않도록 YCC 목표치를 정해 놓고 있다.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동시에 국채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