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공산주의 정권의 미지막 총리였던 한스 모드로의 최근 모습./한스 모드로 제공

“둘로 쪼개진 독일을 하나로 통합하는 건 가야만 했던 길이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의 붕괴에 따른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하기도 어려운 물결이었죠. 그러나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통일을 급히 밀어붙인 부작용 때문에 30년이 지나도 동·서 간 차이는 극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옛 동독의 공산 정권에서 마지막 총리를 지낸 한스 모드로(92) 독일 좌파당 명예당수는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아 최근 본지와 가진 이메일 인터뷰에서 “진정한 ‘하나 된 독일’은 달성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3일 독일은 통일된 국가로 재출발한 지 30년째를 맞았다.

1990년 한스 모드로(왼쪽) 당시 동독 총리와 헬무트 콜 서독 총리./도이체벨레

동독 사회주의통일당(SED) 내의 개혁파였던 모드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나흘 만인 1989년 11월 13일 총리에 올라 5개월 동안 총리를 맡으며 격동의 시간을 보냈다. 아흔이 넘은 고령인 데다 코로나 사태가 맞물려 이메일을 두 차례 주고받았다.

모드로 전 총리는 “코로나 사태로 3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지 못한 탓에 모두들 차분하고 냉정하게 지난 30년을 돌아보고 있다”며 “독일은 여전히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걸쳐 이원적인 사회 구조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30년이 지났지만 동독인으로서 대학 총장이 되거나 연방 대법관이 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대사나 군 장성도 동독 출신이 거의 없는 채 고위 공직자의 80% 이상을 서독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고 했다.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한스 모드로 제공

동·서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에 대해 모드로 전 총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중심으로 서방이 힘으로 밀어붙여 차분한 준비 없이 통일을 서둘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세계 정세 속에서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소련이 독일 통일에 동의해줄 시간이 길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재촉만 했어요. 나는 1990년 1월 모스크바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서독과의 통일 협상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는 방법을 협의했지만 실패했어요. 이미 내부 혼란이 극심한 소련은 붕괴 상태로 가고 있었고 나를 도와줄 여력이 없었죠.”

모드로 전 총리는 “급격한 통일로 8000개가 넘는 동독 기업이 도산하면서 그나마 동독이 자생적으로 쌓아올린 경제적 토대를 끌어안지 못했다”며 “결국 30년간 300만명이 넘는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동독 내부의 문제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동독 시절 공산주의를 현실에 맞게 개혁하려고 노력했지만 소련의 반대와 통제에 의해 실패하는 바람에 서독 및 자본주의와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통일을 맞았다”고 했다.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한스 모드로 제공

모드로 전 총리는 “지금도 내가 1990년 초에 제안한 ‘3단계 통일론’이 후유증을 막을 수 있는 길이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첫 단계로 동·서독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의하고, 두 번째 대외 정책을 공동으로 추진하면서 통일 이후의 법률 토대를 만든 후, 세 번째로 통일된 국가를 만들자고 했다.

모드로 전 총리는 “점진적인 통일을 이뤄내지 못한 탓에 동독인들은 하루아침에 법 체계, 화폐, 문화를 잃고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고난을 겪었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여전히 동독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이 크고 서독인들은 그런 동독인들을 불신한다”며 “통일 이후 출생한 동독 젊은이들마저도 사회적 신뢰를 얻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통일 직전… 감격의 키스 - 독일 통일 전날인 1990년 10월 2일 밤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한 커플이 입을 맞추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분단국이 된 독일은 45년이 지난 이때 통일을 이뤄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드로 전 총리는 일명 ‘모드로법(法)’을 제정해 통일의 충격을 막았던 것을 그나마 자신이 해냈던 일이라고 했다. 동·서독이 쪼개지기 이전에 서독인이 가지고 있었던 땅이 통일 이후 원래 소유자의 후손에게 넘어가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동독인이 당장 쫓겨나지 않도록 하는 법률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한반도 통일에 대해 모드로 전 총리는 “분단 이후 남북한은 워낙 다른 나라가 됐기 때문에 통일을 하더라도 천천히 서로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한에서 ‘우리가 성공한 모델’이라며 북한을 지배하려는 태도는 곤란합니다. 서독인이 동독인을 그렇게 대했기 때문에 30년이 지나도 진정한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