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중심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사무엘 파티 추도행사에 수많은 추도객들이 운집해있다. 이날 파리 뿐 아니라 리옹, 스트라스부르, 낭트, 마르세이유 등 주요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추모집회가 열려 고인을 추모하고 극단주의에 대해 연대해서 맞설것을 다짐했다. 시위대는 파티의 사진뿐만 아니라 '내가 사뮈엘이다', '내가 교사다’ 등의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나와 고인에게 연대를 표했다. '나는 ~이다' 식의 추모문구는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됐던 2015년 샤를리 에브도 총기난사 테러 추모 때도 등장했었다. /로이터 연합뉴스

파리 근교에서 중학교 사회 교사가 퇴근길에 이슬람 교도에 의해 목이 잘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교사는 표현의 자유를 가르친다는 취지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주간지 만평을 학생들에게 보여줬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노한 범인이 계획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프랑스 검경이 판단하고 있다. 유럽 한복판에서 목을 자르는 이슬람식 보복 살인이 벌어지자 유럽인들이 공포에 떨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16일 오후 5시쯤(현지 시각) 파리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도시 콩플랑-생트-오노린의 대로변에 목이 잘린 시신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희생된 사람은 인근 중학교에서 역사·지리를 가르치는 47세의 사뮈엘 파티라는 교사였다. 출동한 경찰은 도주하는 범인을 뒤쫓으며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요구했지만, 불응하자 사살했다. 범인은 압둘라 안초로프라는 이름의 18세 소년으로, 러시아 내 자치 지역인 체첸공화국 출신으로 밝혀졌다. 체첸공화국은 주민의 절대다수가 수니파 이슬람교도다. 압둘라는 6세 때인 2008년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으며, 지난 3월 가족과 함께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체첸 출신 무슬림에 의해 목이 잘려 살해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플리커

압둘라는 범행 직후 트위터에 사뮈엘의 자른 목의 사진과 함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저주하는 글을 띄웠다. 압둘라는 “반역자들의 두목인 마크롱, 너의 강아지 중 하나를 처단했다”고 썼다. 당일 밤 범행 현장을 찾은 마크롱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범죄”라고 규정했다.

사뮈엘이 근무하던 학교를 경찰관들이 지키고 있다./AFP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프랑스 주류 사회와 600만명에 달하는 프랑스 내 무슬림과의 갈등이 폭발한 성격을 띠고 있다. 숨진 사뮈엘은 지난 5일 수업 시간에 표현의 자유를 가르친다며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2015년 게재해 논란을 일으킨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보여줬다. 무함마드가 알몸으로 엉덩이를 드러내는 모습을 그린 만평이다. 무함마드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기는 무슬림 입장에선 모욕적인 묘사다. 이후 2015년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는 분노한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난입해 편집국장을 비롯해 모두 12명을 사살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수업 당시 사뮈엘은 무슬림 학생들에게 “거북하면 교실 밖으로 나가 있어도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1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공화국광장에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를 추모하는 인파 수천 명이 모여 있다. 사뮈엘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조롱했다는 이유로 16일 오후 무슬림 청년에 의해 목이 잘려 살해당했다. /AP 연합뉴스

사뮈엘이 무함마드를 조롱한 만평을 보여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무슬림 학부모들이 거칠게 항의했다. 지난 8일엔 한 남성 학부형이 이슬람 사제와 함께 교장을 찾아가 사뮈엘을 수업에서 배제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사뮈엘은 이 학부형을 명예훼손으로 경찰에 고소하며 다툼을 벌였다. 이 학부형은 소셜 미디어에 학교 이름과 사뮈엘의 실명을 거론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경찰은 이 학부형과 범인 압둘라의 가족 등 모두 10명을 체포해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건 개요를 보면 범인 압둘라는 이른바 ‘외로운 늑대’로 불리는 자생적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스 정보기관인 국내안보총국(DGSI)은 ‘피슈 에스(Fiche S)’라는 테러 요주의 인물의 리스트를 만들어 동태를 감시하고 있는데, 압둘라는 ‘피슈 에스’에 이름이 없다고 DGSI가 밝혔다. 전과도 없었다. 범죄 단체와 연관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검경은 범행 현장에서 차로 70분 거리의 노르망디 지역에 사는 압둘라가 어떻게 해서 사뮈엘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는지 경위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추모의 꽃다발이 놓인 사뮈엘의 학교./AFP 연합뉴스

프랑스 언론은 유럽의 무슬림 중에서도 체첸인들이 특히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중부도시 디종에서 16세 체첸 소년이 지역 범죄 단체 조직원들에 의해 폭행당하자, 벨기에·독일 등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체첸인 200여명이 디종 시내 곳곳에서 차량을 불태우고 상점을 약탈하는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프랑스에서는 수업에서 교사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무슬림들이 도전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심각한 교권 침해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숨진 사뮈엘은 배우자 없이 다섯 살 아들과 단둘이 살아왔다고 주변인들이 증언했다. 그가 근무하던 학교에는 주말에 시민들이 찾아와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온라인에서는 ‘내가 사뮈엘이다’ ‘내가 교사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며 그를 추모했다. 그를 지지하는 연대 집회도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