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국무장관에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지명하자 프랑스가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블링컨은 초·중·고를 파리에서 졸업하며 10대 시절을 파리에서 보낸 ‘친불파’다. 르피가로는 “프랑스에 우호적인 인사가 바이든 외교정책을 지휘한다”고 했고, 공영 라디오 RFI는 “바이든이 국무장관으로 불어 능통자를 골랐다”고 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블링컨은 아홉 살이던 1971년 파리로 전학을 갔다. 블링컨의 친부와 이혼한 어머니가 폴란드계 미국인 변호사인 새뮤얼 피자르와 재혼했는데, 피자르가 자신이 활동하던 파리로 블링컨을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블링컨은 프랑스의 손꼽히는 명문 사립인 ‘에콜 자닌 마뉘엘(EJM)’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하버드대에 진학할 때까지 9년간 파리 생활을 했다. 그는 국무부 부장관 시절인 2015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 모교 EJM에서 강연을 하며 애정을 표시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독일 언론들도 블링컨에 대해 유럽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아는 인물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불협화음을 낳은 대서양 동맹이 블링컨을 통해 복구될 것이라는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방송사 프랑스앵포는 “블링컨은 유럽의 친구”라고 했다.
영국 언론들은 “블링컨이 파리에서 10대를 보낼 때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광팬이었다”며 블링컨과 유럽의 관계를 부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블링컨이 1980년 EJM을 졸업할 때 사진까지 구해 보도했다. FT는 “블링컨은 미국이 인기가 없던 냉전 시절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어떻게 보는지를 해외에서 체감한 인물”이라며 “미국의 힘을 신뢰하지만 한계도 알기 때문에 바이든의 외교정책을 현실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은 파리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당시 인권운동가였던 양아버지 피자르의 영향을 받아 보편적인 인권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고 한다. 폴란드 태생 유태인이었던 피자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모와 여동생을 잃은 뒤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인물이다. 파리에 살던 친지의 도움으로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와 미국 변호사가 된 뒤 뉴욕과 파리를 무대로 인권운동을 해왔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 당시를 회고한 그의 저서는 19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피자르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태인 추모 시설인 파리의 쇼아기념관을 설립해 관장을 맡기도 했다. 블링컨의 의붓 여동생인 피자르의 딸은 현재 파리에서 다문화 이해를 증진하는 단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AFP통신은 “양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블링컨은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에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개입하는 것을 적극 옹호하는 성향”이라고 했다.
블링컨이 다닌 EJM은 영어와 불어로 수업하는 이중 언어학교로서 유럽의 상류층이나 유명 인사들이 선호하는 학교다. 베르나르 아르노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그룹) 회장의 며느리이자 세계적인 모델인 나탈리아 보디아노바의 아들과 딸이 현재 재학중이다. 배우 알랭 드롱, 소피아 로렌, 제인 버킨, 소피 마르소의 자녀들도 이 학교를 나왔다. 모나코 왕가, 석유 재벌 슐럼버거 가문, 프랑스 통신 재벌 부이그 가문, 콜롬비아 최대 재벌 산토 도밍고 가문의 자제들도 이곳을 졸업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도 아들을 이 학교에 보냈다.
미국과 벨기에에 기반을 둔 국제 분쟁 연구기관인 ICG그룹의 로버트 말리 대표는 블링컨과 고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다. 블링컨은 하버드대, 말리는 예일대로 진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