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하원 연설에서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며 호소하고 있다./유튜브

9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의 연방 하원. 내년 예산안을 놓고 시정 연설을 하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평소처럼 침착하고 온화한 어머니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메르켈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추가 봉쇄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주먹을 내지르며 열변을 토했다. 이날 독일 보건당국이 코로나 사망자가 590명이라고 발표해 종전 하루 최다 사망자 기록(487명)을 넘어선 데 대해 방역 규제를 준수해달라고 요청했다.

메르켈은 “불필요한 접촉이 아직 많다”며 사람들 간의 접촉을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글뤼바인이나 와플을 사서 바로 먹는 걸 (독일인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사서 집에 가서만 먹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안다”며 “정말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메르켈은 이어 “그러나 하루에 590명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는 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메르켈은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의 방역 기준을 준수해달라는 간절함이 담긴 호소였다.

9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하원 연설에서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며 호소하고 있다./유튜브

66세 여성 총리의 진심어린 호소에 하원 의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메르켈은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기 이전에 너무 많은 접촉을 하고 그래서 이번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와 마지막 크리스마스가 된다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며 “우리는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메르켈은 “과학자들이 이번 크리스마스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일주일 정도 접촉을 줄여달라고 거의 빌다시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독일 방송사들은 이날 메르켈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거나 주먹을 내지르며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냈다.

9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방역 수칙을 지켜달라며 주먹을 내지르며 호소하고 있다./유튜브

메르켈은 지난달 22일 재임 15주년을 맞았다. 장기 집권을 하고 있지만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달 공영방송 ARD 여론조사에서 메르켈의 지지율은 2015년 이후 최고치인 74%에 달했다. 그는 내년 10월 치르는 총선까지 재임하고 물러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해왔다. 따라서 메르켈의 방역을 위한 노력은 사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독일 내에서는 그의 뒤를 이어갈만한 마땅한 정치 지도자가 없다며 메르켈이 내년 총선 이후에도 총리를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메르켈이 예고한 시점까지 16년간 집권하고 물러나면 헬무트 콜 전 총리(1982~1998년 재임)와 함께 역대 최장수 독일 총리로서 타이 기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