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 예방 백신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다른 백신보다 효능이 떨어지고 부작용이 크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몇 달을 기다려서라도 다른 백신을 맞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의료진 가운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불신이 커지는 양상이다. 한국이 1분기에 도입하기로 한 백신 100만명분 중 94만명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18일(현지 시각) 일간 타게스슈피겔에 따르면, 여론조사회사 시베이가 독일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대신 다른 백신을 기다리겠느냐’는 질문에 34.8%가 ‘꼭 그렇게 하겠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라고 17.3%가 응답한 것까지 합쳐 과반수가 넘는 52.1%가 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독일 전역에는 74만개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배포됐지만 그중 실제 접종된 분량은 10만7000개에 불과하다고 타게스슈피겔은 보도했다. 독일 서부 자를란트주의 한 접종센터에서는 이 백신을 맞기로 예약된 의료진 200명 중 절반이 나타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독일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로마의 피우미치노공항에 설치된 접종센터에서는 백신을 맞기 직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준비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의료진이 접종을 거부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다. 의사 안토니오 마지씨는 안사통신 인터뷰에서 “로마 일대의 개원 의사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는 계속 진료 활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코로나로부터) 보호받기 어렵다는 뜻을 보건 당국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파리 근교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전염병 전문의 뱅자맹 다비도씨는 방송 인터뷰에서 “효력이 떨어지는 백신을 의료진에게 먼저 접종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회분당 실제 접종된 분량은 15~20회분 정도”라고 했다. 프랑스 중부 페리귀외병원의 노동조합은 성명을 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의료진에게서 부작용이 너무 많이 나타나고 있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으로 바꿔달라”고 했다. 일간 가디언은 오스트리아·불가리아 등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는 이 백신의 예방 효과가 70%로, 94%인 화이자나 94.1%인 모더나 백신에 비해 효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두통, 오한, 발열 등 부작용이 다른 백신에 비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독일과 프랑스 일부 병원에서는 이 백신을 맞은 뒤 부작용을 호소하는 의료진이 많아 접종을 일시 중단한 일도 발생했다.
유럽 각국의 보건 당국은 불신을 해소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백신 접종 자문위원회 회장인 면역 전문가 알랭 피셰르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등 백신’이 아니다”라며 “어떤 백신이든 빨리 맞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자청해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는 장면을 방송에 공개했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도 “지금까지 사용이 승인된 백신은 모두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거부 반응을 인정하고 접종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하엘 뮐러 베를린 시장은 “의료진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교사나 경찰관으로 우선 접종 대상 직종을 빨리 바꾸자”고 했다. 카르스텐 와츨 독일면역학협회 사무총장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먼저 맞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중에 백신 공급이 원활해지면)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을 추가로 맞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