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 대표/AFP 연합뉴스

요즘 프랑스 정치권에선 내년 대선에서 극우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53) 대표의 인기가 상승세를 타면서 다자 대결에선 그가 재선을 노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앞서고, 양자 대결에서도 막상막하 지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회사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지난주 실시한 조사에서 마크롱과 르펜이 대선 결선투표에서 대결을 벌일 경우 마크롱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은 53%, 르펜 지지 응답은 47%였다. 지난 1월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 마크롱 52%, 르펜 48%였던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이 득표율 66.1%로, 33.9%의 르펜을 압도했던 것과 비교할 때 격차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양자 대결 이외에 여러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에서는 르펜이 마크롱을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지난 1월 조사에서 르펜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7%, 마크롱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24%였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1·2위가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변호사인 르펜은 프랑스 극우 정치의 원조인 장마리 르펜(93)의 딸이다. 2004년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르펜은 아버지의 후광을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넘어서며 극우 정치의 반경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버지 르펜은 2002년 대선 때 결선투표에 올랐지만 17.8% 득표에 그쳐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완패했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2대에 걸쳐 대선 결선투표에 오른 장마리 르펜과 마린 르펜 부녀.

르펜 지지율 상승세는 무엇보다 600만명이 넘는 무슬림에 대한 국내 반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무슬림 소년이 길거리에서 교사를 참수한 사건을 비롯해 잇따른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강력 범죄를 우려하는 프랑스인이 늘고 있다. 게다가 중도우파를 지향하는 마크롱 대통령이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우왕좌왕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좌파 진영에는 이렇다 할 대선 주자가 떠오르지 않는 것도 르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요즘 르펜은 부드러운 이미지로 외연을 넓히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민자들을 겨냥한 공격적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2011년 아버지로부터 당권을 넘겨받은 르펜은 강경한 인종차별주의자인 아버지를 2015년 당에서 퇴출시켜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그는 아버지와 달리 유대인은 공격하지 않고 있다. 2018년 국민전선이라는 당명을 좀 더 부드러운 국민연합으로 바꾸기도 했다.

르펜은 최근 뉴스채널 BFM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프랑스는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별 차이가 없었다”며 “내가 좌파와 우파의 장점만을 모아보겠다”고 했다. 르펜의 약점은 지지율이 높아질수록 극우 정권을 막아야 한다는 경계심도 커진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당 소속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인터뷰를 통해 “극우 정권이 들어설 것 같아서 두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