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야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정당인 녹색당이 안나레나 베어보크(41) 당 공동대표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녹색당이 총리 후보를 낸 것은 1980년 창당한 이후 처음이며, 베어보크는 1980년생이다. 차기 독일 총리는 오는 9월 총선이 끝난 뒤 연방 하원의원들이 표결로 선출하게 된다.
41년간 원내 소수 정당이었던 녹색당이 총리 후보를 낸 건 작년부터 안정적으로 야권 지지율 1위를 기록하면서 수권 정당으로서 입지를 다졌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여론조사기관 칸타르가 발표한 정당별 지지율에서 녹색당은 22%로 집권 여당인 기민·기사당 연합(29%) 다음으로 2위였다. 이어 사민당(15%), 자유민주당(9%), 좌파당(8%) 순이었다. 만약 오는 9월 총선에서 녹색당·사민당·좌파당이 합쳐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고 좌파 연정(聯政)을 구성할 경우 베어보크는 16년간 재임한 앙겔라 메르켈의 뒤를 이어 독일 총리로 취임할 수 있다. 독일 좌파 진영에서 주도권을 쥔 정당은 2차 대전 이후 쭉 사민당이었지만 이번 총선을 앞두고 무게추가 녹색당으로 옮겨졌다.
베어보크는 2005년 녹색당에 들어와 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의 보좌관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28세에 브란덴부르크주의 녹색당 지역대표가 됐다. 33세에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37세에 당 공동대표로 선출됐다. 녹색당 대표답게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소신이 강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강한 톤으로 비판해왔기 때문에 그가 총리가 될 경우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내다봤다.
베어보크는 고등학생 때 미국에 1년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함부르크대를 졸업한 다음에는 런던정경대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영어에도 능통하다. 10대 시절 트램펄린 체조 선수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정치도 스포츠처럼 단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정치 컨설턴트인 남편과 두 딸을 키우고 있다.
베어보크와 겨루게 될 기민·기사당 연합의 총리 후보는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가 선출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마르쿠스 죄더 기사당 대표가 대중 지지도가 더 높아 기민당 일각에서 죄더를 지지한 것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19일 열린 기민당 집행위원회에서 46명의 위원 중 31명이 라셰트를 지지하기로 결정해 사실상 승부가 끝났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9월 총선 이후 총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작년까지는 기민·기사당 연합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30%대를 유지하던 기민·기사당 연합 지지율이 작년 하반기부터 20%대로 처지면서 점치기 힘든 승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