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잡지 발뢰르 악튀엘. 인종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슬람주의자들이 무리 지어 사는 지역은 프랑스 헌법에 위배되는 교리의 대상이 되는 영토로 변했습니다. 증오를 일으키며 인종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치명적인 위협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닙니다. 방치하면 내전이 벌어져 커지는 혼란을 마무리할 겁니다. 당신이 책임져야 할 목숨이 수천명에 달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전직 장성 20명을 대표로 1000명 이상의 전·현직 군인들이 이슬람 사회에 대한 통제를 촉구하는 취지의 공개 서한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보내 프랑스가 발칵 뒤집혔다.

이 서한은 지난 21일 극우 잡지 ‘발뢰르 악튀엘’에 실렸다. 전직 장성들은 “교외의 무슬림 이민자 집단 거주지는 더 이상 프랑스의 가치가 유지되지 않는 곳”이라며 “분리주의자들은 우리의 역사와 과거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0년전만 하더라도 프랑스인 교사가 무슬림에 의해 길에서 참수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작년 10월 무슬림 10대 소년에 의해 목이 잘린 교사 사뮈엘 파티 사건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들은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우리의 문명 가치를 보호하고 국토에서 우리 시민을 보호하는 임무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길거리에서 10대 무슬림 이민자 소년에 의해 목이 잘려 살해된 중학교 교사 사뮈엘 파티.

발뢰르 악튀엘은 극우 성향이 강해 비판을 받는다. 작년 8월 흑인 여성 국회의원을 쇠사슬에 묶인 노예로 묘사한 일러스트를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또 이번에 서한을 작성한 전직 장성들이 현역 시절 중량급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들이 특정 종교와 인종에 대한 증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며 비난이 제기됐다.

그러나 이 공개 서한이 발간된 지 불과 이틀이 지난 23일 튀니지에서 건너온 무슬림 이민자에 의해 40대 여성 경찰관이 파리 남서쪽 근교의 한 경찰서 안에서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또한 일부 현역 장교가 이 서한에 서명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에 대해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이 “정치적 중립을 어긴 책임을 묻겠다”며 징계 방침을 밝혀 논란이 커졌다. 28일 프랑수와 르코앵트르 합참의장은 “장교 4명을 포함해 현역 군인 18명이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프랑수와 르쿠앵트르 프랑스 합참의장/AFP 연합뉴스

이번 공개 서한은 정치 이슈로도 확장됐다. 프랑스 극우 정치의 구심점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가 “전역 장성들에게 공감을 표시한다”며 “내 (대선) 캠프에 동참해달라”고 말해 논란이 확산됐다. 르펜은 대선 여론조사에서 1~2위를 달리고 있으며, 2017년 대선에 이어 다시 내년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결선 투표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정치인으로 꼽힌다.

프랑스는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이슬람 사회에 대한 정치적 대응 방안이 이슈가 되고 있다. 프랑스 전체 인구 약 6600만명 중 무슬림이 600만명 이상이다. 파리 북쪽 외곽 생드니를 비롯해 무슬림들이 뭉쳐 살고 있는 일부 지역은 프랑스인들이 거주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