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결장 협착증 수술을 받고 열흘간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해 교황청에 도착하고 있다./AP 연합뉴스

14일(현지 시각) 프란치스코 교황이 관용차를 타고 로마 시내 제멜리 병원을 빠져나왔다. 지병인 결장 협착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열흘 만에 퇴원했다. 교황은 로마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들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데 대한 감사 기도를 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올해 85세인 교황은 10대 때 폐 질환을 앓아 한쪽 폐를 잘라냈다. 최근에는 거동이 다소 불편한 모습이 목격되는 등 고령으로 인한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수술을 위한 입원 기간도 일주일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가 사흘 길어졌다.

하지만 교황이 겪고 있는 신체적 고통은 그가 맞닥뜨리고 헤쳐나가야 할 갖가지 현안이 주는 정신적 압박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지 모른다. 한마디로 몸과 마음이 모두 편치 않은 상황인 것이다.

교황에게 발등의 불로 떨어진 이슈는 캐나다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자행됐던 인권 유린과 잇따라 터져 나오는 교황청 내부 비리·부패 문제다.

가톨릭 교회는 1910년대부터 60여년간 캐나다의 원주민 어린이 15만명을 훈육하는 기숙학교를 운영했다. 오래전부터 가톨릭이 원주민 말살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들었다.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5년 학생 4100여명이 학대, 영양실조, 질병으로 숨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교황청은 아직 공식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옛 기숙학교 터에서 어린이 유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1000구 이상의 유해가 한 곳에서 나오기도 했다. 여론이 들끓자 지난달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교황에게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대장 일부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기 위해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 중이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1일(현지 시각) 삼종기도(아침·정오·저녁 하루 세 차례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기도) 집전을 위해 10층 발코니에 나타나 자신을 기다리던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교황은 이런 난관을 정면 돌파하기로 했다. 교황청은 지난 1일 교황이 오는 12월 캐나다를 방문해 원주민 대표단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의 캐나다 방문은 나흘 일정이며, 3대 원주민 단체를 모두 개별 방문하기로 했다. 충분한 일정을 갖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앞서 교황은 2015년 볼리비아를 방문해 식민지 개척 시대의 원주민 탄압에 대해 사과했고, 2018년에는 아일랜드를 방문해 사제들의 성적 학대를 사과했다.

교황청의 고질적 비리·부패도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교황청 내 최고위급 인사가 관련돼 대형 파문이 일기도 한다. 교황청은 지난 3일 한때 교황청 고위성직자였던 안젤로 베추 추기경을 포함해 6명의 내부 인사를 횡령,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베추 추기경 등은 2014~2018년 사이 이탈리아 사업가가 운영하는 부동산 펀드에 교황청 자금 3억5000유로(약 4730억원)를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베추를 비롯한 교황청 간부들은 브로커와 짜고 불투명한 거래를 했고, 이에 대한 내부 감사 과정에서 입을 맞춰 허위 진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교황은 이 사건을 대충 덮지 않았다. 그는 이번 사건 수사 전반에 대해 자세히 보고받은 뒤, 기소된 간부들에 대한 재판 개시를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건강상 이유로 돌연 사퇴한 베네딕토 16세의 후임으로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출생인 그는 가톨릭 역사상 첫 미주 대륙 출신 교황이다. 부패, 성 추문, 관료주의, 파벌 갈등, 신자 감소 등 교황청을 둘러싼 갖가지 고질병을 고칠 ‘소방수’로 여겨졌다. 그는 평생 청빈한 삶으로 존경을 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 추기경으로 있을 때 관저와 운전기사를 사양했다.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음식을 직접 해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교황은 취임 이후 교단 개혁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재무 부서에 평신도와 외부 전문가를 대거 등용해 자금 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지난 4월 고위 성직자들이 비위를 저질렀을 때 추기경들이 판사를 맡는 별도 재판을 없앴다. 평신도와 똑같이 바티칸의 일반 법원에서 재판을 받도록 특권을 없앤 것이다. 교황은 또 바티칸의 모든 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40유로(약 5만4000원) 이상의 선물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지난 7일 “교황이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인데도 업무에 매달려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뜻이다. 라레푸블리카는 “교황이 9월로 예정된 헝가리·슬로바키아 방문 일정을 점검하고 미래에 레바논과 북한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교황은 오래전부터 북한 방문을 희망한다고 했지만, 북한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가까운 미래에 방북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