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에리크 제무르. /AFP 연합뉴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프랑스 대선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인·작가·방송 진행자로 활동해온 극우 성향의 에리크 제무르 전 르피가로 논설위원의 지지율이 급격히 오르는 것이다. 제무르는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정치가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를 누르며 지지율 2위로 뛰어올라 선두를 달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세 여성 보좌관과 해변에서 밀회를 즐기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주간지에 게재됐지만 대선 후보 지지율에 악재가 되지 않고 있다.

6일(현지 시각)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발표한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제무르는 17%를 얻어 24%인 마크롱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그가 2위로 뛰어오른 것은 처음이다. 올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를 지킨 르펜은 15%에 그쳐 3위로 처졌다. 이번 조사에서 마크롱과 제무르가 결선 투표에서 맞붙을 경우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마크롱 55% 대 제무르 45%라는 결과가 나왔다. 제무르가 마크롱까지 위협할 만한 상대가 된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를 두고 프랑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소속 정당도 없고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제무르가 실제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로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이 제무르를 후보에 넣어 조사를 시작한 게 두 달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피에르-아드리앙 바르톨리 이사는 “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대선 후보로서 지지율을 끌어올린 건 프랑스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제무르는 과거 “무슬림 200만명을 추방해야 한다”거나 “마약 밀매를 하는 자들은 흑인과 아랍인들”이라고 하는 등 자극적인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켜온 인물이다. 최근에도 “이민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프랑스에 미래는 없다”고 주장해 무슬림이나 이민자들에게 반감을 가진 프랑스인들을 자극하고 있다.

알제리계 이민 2세인 제무르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하고 언론인 생활을 했다. 그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건 2014년 ‘프랑스의 자살’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출간했을 때다. 이 책에서 그는 68혁명으로 인해 프랑스가 망가졌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쳤다. 이민자·동성애 문제가 68혁명의 가치를 따르다 생겼다는 요지였다.

근년에는 방송 채널인 CNEWS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인기를 얻었다. CNEWS는 ‘프랑스의 폭스뉴스’로 불리는 우파 성향 매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무르 덕분에 CNEWS 시청률이 크게 올랐다”고 했다.

극우 대표 정치인이 르펜에서 제무르로 교체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 무대에 오래 머무른 르펜은 식상하고 제무르는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다. 말솜씨가 투박한 편인 르펜에 비해 제무르는 달변가이고 글을 잘 쓰기 때문에 ‘지적인 극우’로 통한다. 최근에는 르펜의 아버지인 ‘원조 극우’ 장-마리 르펜이 제무르를 지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속 정당도 없는 단기필마인 제무르가 실제 대통령이 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있다. 극우에 대한 반감이 큰 유권자도 많기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