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각)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시내에 10만명이 운집해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폴란드 국기와 EU(유럽연합) 국기를 나란히 흔들며 “폴렉시트는 안 된다”고 외쳤다. 폴렉시트(Polexit)란 폴란드의 EU 탈퇴를 말한다. 이날 ‘폴렉시트 반대 시위’는 바르샤바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약 100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시위를 주도한 이는 제1야당인 시민연단의 당 대표 도날트 투스크(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였다. 투스크는 “여당이 EU와 맞서며 폴란드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외쳤다.
이날 시위는 극우 포퓰리즘 성향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을 향해 EU와 충돌하지 말라고 요구하기 위해 열렸다. 법과정의당은 2015년 집권한 이후 노골적으로 사법부와 언론 장악을 시도해 EU와 마찰을 빚어왔다. 법과정의당은 2018년 판사 임면권을 가진 기구인 국가사법위원회 위원 25명 중 15명을 법무장관이 지명할 수 있게 했다. 실질적으로 여당이 법원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EU는 이 같은 행태가 사법부 독립을 저해한다며 시정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법과정의당이 EU의 요구를 계속 무시했고, 지난 3월 유럽사법재판소(ECJ)는 폴란드 정부가 사법 장악을 시도하며 EU법을 위반했다고 결정했다. 그러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ECJ 결정과 폴란드 헌법 중 어떤 쪽이 상위법인지를 가려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지난 7일 폴란드 헌법재판소는 EU 조약·결정보다 폴란드 헌법이 우위라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대해 EU 집행위원회가 “EU법은 모든 개별 국가의 법보다 상위법”이라며 강력히 비난해 갈등이 고조되자 폴란드인들이 “폴렉시트는 안 된다”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만약 폴렉시트가 벌어지면 폴란드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EU 집행위원회는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동유럽 회원국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EU를 지탱한다. 3800만명의 인구로 동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인 폴란드는 작년에 EU 회원국 중 가장 많은 180억유로(약 25조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이 돈이 끊길 경우 폴란드인들은 정부를 거쳐 받는 각종 수당을 못 받게 될 수 있다. 수출입이나 유럽 내 이동에서도 막대한 손실과 불편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폴렉시트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법과정의당도 EU와 맞서면서도 여론을 의식해 “EU를 탈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U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회원국의 추가 이탈을 막으면서 동시에 폴란드⋅헝가리의 사법 장악을 저지해야 하는 난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