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단숨에 제압하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 전황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당초 뜻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예상보다 거셌고, 서방은 일치 단결해 러시아를 향해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 22년째 장기 집권 중인 푸틴이 최근의 국제 정세 흐름을 냉철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판단력이 흐려져 자충수를 두고 있고, 군사 전술 전개 과정에서 오판을 거듭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부 서방 전문가는 푸틴에 대해 ‘정신 이상설’까지 거론하고 있다.

회담장의 러시아·우크라 대표단 - 러시아 대표단(왼쪽)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28일(현지 시각) 벨라루스 국경 도시 고멜에서 회담을 진행했다. 특히 이번 회담에는 다비드 하라하미야 우크라이나 집권당 대표(오른쪽 검정 모자 쓴 사람)와 레오니트 슬루츠키 러시아 하원 외교위원장(맨 왼쪽) 등 양국 의회 대표가 함께 참석했다. /타스 연합뉴스

지난 24일 러시아가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했을 때 국제사회에선 우크라이나가 며칠 못 버틸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러시아 군사력이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단시간에 수도 키예프 등 주요 도시를 장악하는 데 실패했다. 벌써부터 서방 언론들은 러시아군이 소모적인 장기전을 벌여야 한다면 그 자체로 푸틴이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이 크게 3가지 실수를 했다고 분석했다. 먼저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얕봤다가 큰 코를 다쳤다.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푸틴은 CIA(미 중앙정보국)가 러시아 견제를 위해 세운 가짜 정부라고 주장해왔다. 이런 ‘세뇌’ 작업이 장기간 지속되는 과정에서 푸틴 스스로도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봤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옛 소련 정보기관인 KGB 소속 정보원이었던 푸틴은 심리전에 집착하는 편이다.

2월 27일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시민들이 러시아군에 대항하기위해 화염병을 만들고 있다./EPA 연합뉴스

둘째로 푸틴은 러시아군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푸틴의 선전 선동술에 젖어든 러시아 군인들이 목표 의식이 흐려진 채 전장(戰場)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푸틴은 공격의 명분을 우크라이나의 탈(脫)나치화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인들을 해방시키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생각해 현지에서 환영받을 것으로 착각하며 우크라이나로 갔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에는 우크라이나계 혈통을 일부 이어받은 병력이 적지 않기 때문에 푸틴이 과감한 사살 명령을 내리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푸틴의 셋째 실수는 서방의 결집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똘똘 뭉쳐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면서 푸틴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은행들은 해외 은행들과 거래가 막히게 됐다.

2월 25일 벨기에 브뤼셀 NATO 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화상으로 열린 나토 정상회의./EPA 연합뉴스

푸틴은 유럽 주요국들이 러시아에서 에너지를 수입하고 대금을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SWIFT를 통한 제재를 하지 못할 것으로 봤지만 잘못된 계산이었다. CNN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 여론이 크게 나빠지자 서방 주요국들이 손실을 감수하고 러시아를 SWIFT에서 퇴출시켰다”고 했다. 별도로 서방은 푸틴 개인을 제재 대상으로 올려 적어도 1000억달러(약 120조원)로 추정되는 그의 해외 비자금도 동결시켰다.

푸틴이 예전처럼 영민하고 냉철하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미 정보 당국에서는 푸틴의 격분한 듯한 행동에 대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고 있다”며 “실용적이며 계산적이고 교활한 푸틴의 원래 모습이 아니다”라고 했다. 따라서 판단이 흐려진 푸틴이 돌발 행동을 할까 봐 백악관이 긴장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CNN에 나와 “개인적으로 푸틴이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했고, 마이클 맥폴 전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도 “푸틴을 30년 넘게 지켜봤는데, 요즘 그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졌다”고 했다.

2월 27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을 불러 핵전력 경계태세 강화를 지시하는 푸틴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푸틴이 핵무기 발사 준비 태세를 갖추라고 지시한 것 자체가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아 당황한 나머지 엉뚱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간 더타임스는 푸틴이 ‘오만 증후군’(hubris syndrome)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자 성격이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오만 증후군 증상으로는 자기도취, 과대망상, 판단력 저하 등이 거론된다.

푸틴은 오는 10월 만 70세가 된다. 이전에도 푸틴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건강 이상설이 제기돼 왔다. 2020년 영국의 더선은 러시아 학자들을 인용해 푸틴이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