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해상 길목인 수에즈운하에서 22만4000t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호가 좌초한 사고로 동물 수천 마리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동물 운반선들이 운하 통행 재개를 기다리는 사이 배에 실린 동물들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7일(현지 시각) 일간 가디언은 수에즈운하 근처 해상에서 대기 중인 동물 운반선이 20척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대부분 유럽에서 중동으로 가던 선박들이다. 중동 국가들은 이슬람식 도축 방식을 적용한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도록 허용된 제품)로 인정하려 유럽에서 키운 동물을 살아있는 채로 선박을 통해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대부분의 동물 운반선이 동물용 사료와 마실 물을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 보호 단체 ‘애니멀 인터내셔널’은 이날 “이틀 안에 사료와 물이 떨어지는 선박들도 있을 것”이라며 “빨리 운하 통행이 재개되지 않으면 큰 비극을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굶주림 이외에도 탈수, 체내 노폐물 축적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동물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일부 동물 운반선은 출발한 항구로 되돌아가는 것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정부는 임시 대책으로 수에즈 운하 근처에 대기중인 3척의 동물운반선에 수의사와 사료를 보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에버기븐호가 지난 23일 좌초한 뒤 27일까지 수에즈운하 양쪽 방향에서 통행 재개를 기다리는 선박이 429척까지 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언제 운항 재개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이집트 정부 산하 수에즈운하관리청(SCA)은 에버기븐호를 수면 위로 다시 띄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포클레인을 동원한 준설 작업으로 운하 가장자리에 처박힌 뱃머리 주변의 모래와 흙 약 2만t을 파냈다. 별도로 무게를 줄이기 위해 선체의 평형수도 9000t 빼냈다. 이후 예인선 14척을 동원해 에버기븐호의 방향을 돌려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미 해군은 준설 작업 전문가들을 현장에 보내 기술 지원을 했다.
이와 별개로 대형 해상 크레인이 사고 현장에 급파됐다. 크레인으로 에버기븐호에 선적된 컨테이너를 일부 내리면 선체가 가벼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SCA 요청으로 준설 작업을 한 네덜란드 업체 스미트 샐비지는 “주초에 선체 띄우기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오사마 라비 SCA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많은 변수가 있어 떠오를 시점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CNN은 “대기하던 선박 중 최소 10척은 운하 근처에서 멀어졌다”고 했다.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거나 출발한 항구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